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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성의역사속에서)
코끼리이야기
기사입력: 2005/04/29 [12:27]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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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성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진다.” “코끼리가 밭을 갈고 새들이 김을 맨다.”는 옛말이 있다.
지금이야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이 코끼리라면 실물을 동물원에서 보았거나 책이나 TV에서 간접적으로 보고 알고는 있다. 알지도 못하는 동물을 아무리 설명한다고 해도 그 실체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런데 속담처럼 코끼리가 어떻고 하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코끼리를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원래 우리 나라에는 코끼리가 자생하거나 살아갈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런 속담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러면 역사의 기록 속으로 들어가 보자.
조선왕조실록 태종때 일본으로부터 코끼리 2마리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고 세종 때는 코끼리를 길렀다는 기록도 있다.
<충청도 관찰사가 계하기를, “공주(公州)에 코끼리를 기르는 종이 코끼리에 채여서 죽었습니다. 그것이 나라에 유익한 것이 없고, 먹이는 꼴과 콩이 다른 짐승보다 열 갑절이나 되어, 하루에 쌀 2말, 콩 1말 씩이온즉, 1년에 소비되는 쌀이 48섬이며, 콩이 24섬입니다. 화를 내면 사람을 해치니,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되니, 넓고 외진곳에 있는 목장에 내놓으소서.”하였다. 선지(宣旨)하기를, “물과 풀이 좋은 곳을 가려서 이를 내어놓고,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하였다. 이는 조선왕조실록 세종 3년 3월 14일의 기록이다>
또한 기록에 보면 코끼리의 이빨인 상아로 많은 물건을 만들어 썼다.
아홀(牙忽), 상아북채[牙拍], 상아머리빗[象牙梳], 상아패(象牙牌), 상아단주(象牙丹珠), 상아호패, 상아젓가락[象箸], 상아허리띠[象牙帶], 상아자[象牙尺] 등.... 그외 많은 물건들이 있다.
이것이 귀하기는 하였지만 많은 용도로 사용하였다는 것은 널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서우성치과 원장·조선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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