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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 김준호와 평강 손심심의 재피방
리어카 100년
기사입력: 2020/11/10 [11:56]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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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WNEWS

 

  김준호는 18세에 춘당 김수악 명인을 은사로 소리와 악을 배웠으며, 상징민속학을 전공했다. 해병대 484기이며, 2014년 1월 1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4호 국내 지신밟기 예능 보유자로 선정되어 인간문화재가 됐다. 

  손심심은 17세에 문장원, 양극수, 김동원 명무를 은사로 동래양반춤, 동래할미춤, 동래학춤을 시작하였고, 전통무용을 전공했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동래야류 전수조교이고 동래학춤 이수자이다. <편집자주>

 

 

 

▲ 인간문화재 김준호     ©UWNEWS

리어카는 1920년대에 일본에서 건너온 신문물이었다. 처음 우리나라에 유입될 당시에는 편리함과 노동력의 극대화로 ‘운송의 혁명’으로 불리며 각광을 받았다.

 

리어카라는 말은 rear(뒤)+car(차)의 일본식 신조어로 초기에는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달고 다니도록 만들어 “뒤에 끌고 다니는 차”라는 뜻으로 쓰였다.

 

리어카의 기본구조는 차체와 견인부로 나눌 수 있다. 견인부는 철관을 D자형으로 차체 길이 만큼 휘어, 그 속에 사람이 한 사람 들어가 팔과 몸통의 힘으로 견인을 하는데, 견인부에 꼭 사람이 안 들어가도 자전거에 달 수도 있었고 질매에 묶어 소가 끌고 갈 수도 있었다. 차체는 철골 몸체를 수레 형태로 만들어 바닥에 나무판을 깔고 고무바퀴를 끼워서 쓰는 구조로 짐이나 사람을 운송하게끔 되어 있었다.

 

농사는 져다 나르는 것이 반 이상인데, 우리나라는 산악이 발달 되고 도로가 좁아 과거에는 무었이든 지게를 사용했다. 그나마 좁은 길이라도 있으면 소나 말이 끄는 수레를 사용하는 것이 다였다.

 

러나 리어카가 전래 되면서부터 혼자서 인력으로 지게의 5배도 나를 수 있고, 수레의 절반도 거뜬하게 운반할 수 있어 농사일의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또 싣는 짐의 종류에 따라 나무판으로 사각틀을 만들어 흙, 모래, 거름도 실을 수 있었고,

 

 이삿짐, 쟁기 써레 같은 농기구, 나락섬, 짚동, 채소, 잡곡, 가축, 사람 등 뭐든 지 운송이 가능했다. 리어카의 바퀴는 어른 두 손 한 웅큼의 크기로, 안에 튜브를 삽입하여 공기를 주입하는 식이었다. 이 공기 타이어는 무거운 짐을 실어도 잘 견뎌내고, 비포장길에도 덜컹거림이 없어 주행성이 좋았다. 무게중심은 바퀴의 둘레에 붙은 수십 개의 살대가 잡아주는 형태로 무척 튼튼했다. 한 번씩 무리하게 짐을 실어 타이어가 빵구가 나기도 했다.

 

 타이어는 홈이 깊히 파인 방식으로 노면과의 접지력이 좋아 산이든, 모래밭이든, 비탈밭이든, 펄 논이든, 냇가이든, 갯펄이든 가리지 않고 약간의 힘만 주면 어디든지 진입이 가능했다. 리어카는 공인증은 없지만 나름대로 운전을 잘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운전 경력과 상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리어카를 앞에서 끌 때와 뒤에서 밀고 갈 때, 그 느낌을 잘 알아야 했고, 무거운 짐을 리어카의 어느 지점에 싣느냐도 알아야 했다. 코너링에 따라서 무게중심의 쏠림 현상이 생기므로 원심력에 대한 느낌도 알아야 했다.

 

특히 리어카는 제동장치가 없기 때문에 오르막이나 내리막을 갈 때, 리어카 차체의 거치대를 땅바닥에 마찰시켜 속도 조절을 잘 해야 하는 노련함을 배워야 리어카를 몰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리어카도 엄연한 운송수단이기에 항상 사고가 따랐다. 이따금 오일장에 나간 남정네들이 술을 마시고 끌고 오다가 언덕 아래로 거꾸로 쳐박힐 때도 있었다. 오직 사람의 힘 만으로 움직이다 보니 주로 이와 같은 내리막 전복 사고가 많았고, 바퀴에 손발이 끼이는 사고도 잦았다. 모두 중상을 입는 사고라 반상회 때마다 “에 다음은 니아까 사고에 대한 문제입니다” 라고 토의사항에 단골 주의 사항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차량과의 추돌사고로 크게 다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거꾸로 리어카로 사람을 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래서 각 집안에서는 나름대로 10살은 지나야 리어카 핸들을 맡겼다. 리어카의 핸들을 잡자말자, 어른들에게  오르막 내리막 운전 요령, 차량을 피하는 법, 짐을 싣는 요령, 사고가 났을 때 핸들에서 손을 떼고 급하게 엎드려 안 다치는 행동요령에 대해서 나름대로 교육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위험한 것 대부분은 재미가 있었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세상사 사람의 충동이었다. 어른들이 끌고 가는 리어카에 올라타면 그렇게 재미가 있었다. 저학년 때는 리어카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갔다. 사람 보폭으로 가는 리어카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면 구름이 나를 따라오듯이 느껴지고 톡톡 튀는 등어리의 느낌이 그렇게 좋았다.

 

고학년 때는 친구가 모는 리어카 타이어 위의 철근 몸체 위에 말 타듯이 앉거나 옆으로 앉아 여자 친구들 앞에서 제법 숫기 있게 보인다고 서부 사니이 흉내를 내며 만용을 부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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