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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가의발자취)
로사 팍스 (1913 ~ )
흑인 인권운동을 촉발시킨 시킨 주인공
기사입력: 2005/05/28 [11:21]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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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련

미국은 다양한 민족구성과 인종으로 인하여 세계 최대의 강국이 되었지만 인종차별로 인한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콜린 파웰이나 콘돌리자 라이스처럼 몇 몇 흑인이 정부의 주요요직에 오름으로서 흑인도 성공할 수있다는 모델을 세웠지만 흑인의 정체성이 아닌 어디까지나 철저히 백인으로 동화된 결과이다.
그래서 흑인들이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은 주로 연예산업이나 스포츠계이다. 아니면 슬럼가에서 어슬렁거리며 마약을 팔거나 찌든 모습이 보통 흑인에 대한 이미지이다.이제 인종차별에 분노하여 평등과 인권을 위해 싸웠던 로사 루이스 팍스, 말콤 엑스나 마르틴 루터 킹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그들의 투쟁의 전통은 오늘날에는 오직 백인 중심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한 관심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로사 루이스 팍스는 1913년에 앨라바마의 한 시골에서 태어났다.젊은 시절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흑인인권운동을 가르치는 퀘이커 교도가 운영하던 흑인여성학교를 다니며 “인간의 존엄성은 누구도 짓밟을 수 없으며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 뒤 생계를 위해 재봉사로 일을 하다가 195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미국인권운동에 눈을 떠게 되면서 ‘전미흑인지위향상협의회’의 앨라바마 몽고메리 지부 비서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노동자와 흑인의 권리를 교육하는 하이랜더 민속학교에 다니며 인권의식을 강화하고 있었다.
1955년 12월 1일. 43살의 그는 버스를 타고 흑인 좌석줄 맨 앞자리에 앉았다.다음 역에서 한 백인이 승차하였고 운전사는 “흑인은 자리를 비키세요”라고 외쳤다.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고 뒤에 있던 흑인 남자가 일어났다.그는 백인을 보고도 즉시 비켜나지 않았다고 체포되었으며 나흘뒤에 풍기문란죄로 기소되었다.
그의 체포 소식이 전국에 퍼지자 흑인인권운동이 불붙기 시작하였고 당시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루터 목사가 문제의 회사인 ‘몽고메리 버스’보이콧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를 계획했으나 300일이 넘게 지속되어 교통당국에게도 대중버스 안에서 인종차별을 철폐하도록 압력을 넣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1년간 각종 흑인인권운동의 촉발제 역할을 하였다. 이듬해 연방법원이 버스사의 인종차별을 위헌이라고 결론내려 팍스는 인권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 뒤 1965년부터 1988년까지 하원의원인 존 코여스의 비서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999년 의회의 골드메달을 수상하기도 하고 2001년에는 앨라바마에 그를 기념하는 로사 팍스 도서관 및 박물관이 건립되었다.
그 길에는 ‘로사 팍스’도로 이름도 붙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는 92세의 고령으로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
얼마전 초등학생들이 살색을 ‘살구색’으로 바꾸었다는 보도를 접했다.사람은 자기시야로만 세상을 볼 때 다양성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하지만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물들지 않은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바꾸어져야 할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일들이 너무나 많다.로사 팍스는 당연히 여겨 그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았던 백인중심 사회에 작은 파문을 일으켜 거대한 해일이 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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