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김옥길의예절산책)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학자(禮學者)
기사입력: 2006/01/03 [18:25]   울산여성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김옥길(사)한국전례원 명예교수

문>>“우리나라의 대표적 예학자(禮學者)로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선생을 이르는데 그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답>>사계 선생 이외에도 퇴계 이황, 율곡 이이, 한강 정구, 학봉 김성일, 조암 이재 등 많은 예학자가 있으나, 사계 선생만큼 예서(禮書)를 많이 남기신 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학의 태두(泰斗)라 합니다.
 
사계 선생은 조선 명종 3년에 출색하여 1631년 인조 9년에 84세를 일기로 졸 했습니다. 13세 때 구봉 송익필(구峰 宋翼弼) 선생에게 사사(師事)해 사서(四書), 근사록(近思錄)을 배웠고, 20세에 율곡 이이(栗谷 李珥)선생에게 사사해 수재자가 되었으며, 평생을 경서와 예문을 탐구해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학문하는 태도가 간절하고 정밀, 겸허해서 의심나는 점을 적출해 해석하는데 힘썼으므로 저서의 제목에도 경서변의(經書辨疑)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 전례문답(典禮問答), 의례문해(疑禮問解) 등과 같이 ‘疑’와 ‘問’등의 문자를 쓰고 ‘辨’, ‘釋’, ‘答’, ‘解’ 등과 같이 궁금증을 풀어 해석하는 성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상례비요(喪禮備要)’, ‘가례집람(家禮輯覽)’ 등 예서(禮書)를 저술해 우리나라 가정의례에 바탕을 세웠고, 제자를 가르치는데 힘써 그 문하에서 金集, 宋時烈, 宋浚吉, 張維, 崔0吉, 金0 등 거유가 나고 모두 285명의 후학을 배출했습니다.
 
특히 성균관과 지방향교 등 문묘(文廟)에 모셔진 우리나라 유현(儒賢)18인중 沙溪, 愼獨, 齊, 尤庵, 同春 등 본인과 문하에서 4인이 종사했다는 사실이 주목 됩니다.
 
1717년 조선 숙종 43년에 문묘에 종사하고 교지(敎旨)에 선생을 일러 “ ---길고 오묘한 禮文과 어렵고 의심나는 學問은 또한 자세하게 해석하였고, 吉한 일과 凶한 일의 禮節은 모든 사람의 의논을 절충하지 않음이 없어 크고 작거나 높고 낮거나 한 모든 이가 다 같이 혜택을 입으니 그 높고 큰 모습이 온 세상에 泰山과 北斗같이 높았고, 해와 달이 온 누리를 비추는 것 같도다. ---” 했으니 더 설명할 필요가 없으며 근대의 석학인 육당 최남선 선생이 지은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도 선생을 일러 “朝鮮禮學의 宗”이라 했으니 우리나라 예학에서는 사계 김장생 선생이 으뜸이라 하겠습니다.
 
                                                         문의 256-0992
  • 도배방지 이미지

이동
메인사진
[임영석 시인의 금주의 '詩'] 눅눅한 습성 / 최명선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인기기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