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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가치관의 충돌
기사입력: 2005/06/01 [14:38]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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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삶의 현장에서 갈등으로 고통하는 아픔의 시간이 우리를 성숙케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갈등 그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며 그리고 갈등은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갈등이 있어야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갈등은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삶의 에너지가 되는 가치관이 그 갈등을 만들어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부딪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세뮤엘 턴팅턴은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이라크 사태를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들의 충돌로 보았다.

경제적 외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 대신 세계를 움직인다고 본 그가 문명 충돌로 냉전이 종식이 되고 역사의 동질화로 이어져 가치관의 통합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았다.

냉전기간 동안 세게 정치는 양극화되었고 세계는 갈라져 있었다.
 
구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자유경제로 돌아섰다고 세계의 냉전이 끝난 것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 즉 미국의 국익을 위한 이라크전이 나타났다.
 
그러므로 문명적 의식을 가장한 문화적 자기주장을 미화시켜 표면화 한 것이며 여기에 경제의 우위를 위한 가치관이 충돌한 것이다.

북한 핵 문제도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은 핵폭탄을 동포의 머리 위에 떨어뜨리지 않는다고 보고 일본과 그 밖의 잠재 위험세력으로부터 한 민족의 주권을 수호할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북한의 핵무기로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북한의 핵무기와 남한의 발달한 산업과 결합하면 통일 한반도는 동아시아 무대에서 앞서가는 위치를 공고히 다질 수 있다고 보기에 미국의 핵 확산 방지를 위한 어떠한 노력도 대한민국 국민의 가치를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가치관은 자기의 이익이 우선화 되어지기에 삶의 현장은 충돌을 빚어 낼 수밖에 없다.

자기만이 옳다고 하는 종교, 예술, 문화, 기술, 윤리, 철학 등이 자기애라는 집단적 무의식속에 갇혀 있으면 끊임없는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스스로 결정하는 자기 가치가 우선화 하기 때문이다.

일등을 강요당하는 현실의 삶이 고달파 옥상에서 뛰어 내리는 어린 생명들은 바로 어른들의 가치에 항거하는 자의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상층부에 속한 사람들의 자살이 많아진 요즘 가끔 어떤 의미에선 삶이 고통이고 죽음이 안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올라가야 하고 밟아야 하는 생존의 룰이 강박으로 다가올 때 삶과 죽음의 이분법에 선택의 결정이 자살이라는 단어를 찾아내어 죽음의 영원한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닐까.

삶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는데도 마치 이 생의 고통의 삶이 영원히 있을 것 같은 고뇌가 바보스런 죽음이라는 극단적 행진을 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서로 이웃과 함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위해 지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이 세상은 어둠의 충돌이 사라지고 연합이라는 통합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결핍동기로 만들어진 성공은 실패한 성공이듯이 가치관의 통합이라는 기쁨과 열정이 모아질 때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형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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