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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조절’되지 않는 사회는 ‘중독화’되어 가는 사회
기사입력: 2005/06/01 [14:30]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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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우리에게 충동성과 강박성은 없는가.
생활 가운데 반복해서 떠오르는 지속적인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강박성으로 가는 길이고, 개인의 정상적인 바람과 기분에 반대되는 그 어떤 것을 옮기고 싶은 지속적이며 반복적인 욕구는 중독성이라 할 수 있다. 이 충성성과 강박성은 ‘중독’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는 알콜중독자가 400여만명, 마약중독자가 100여만명, 도박중독자가 250여만명, 숫자도 알 수 없는 성중독자, 사이버중독자, 일중독자, 종교중독자, 소비중독자 등을 포함한다면 대한민국은 중독자 왕국이 아닐까?
항상 서두르고 남을 불신하고 흑백논리에 사로잡힌 기질을 갖게 된 우리들의 이러한 병적 기질은 매사에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다. 국회에서는 서로 잘났다고 부끄러운 줄 모른 채 맡겨진 민생문제는 제쳐놓고 당리당략과 출세욕, 인기에 눈이 어두워진 모습을 내보인다. 시위 노동자와 학생들은 회사 기물과 학교를 파괴하면서도 정의를 내세운다.
이 같은 사회병리의 1차적 원인은 덕성교육의 부재로 보여진다. 물질주의에 기울어져 인간의 심성이 황폐화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을 위하는 일에는 관대하고 남을 위하는 일에는 인색해진다. 여기에 도덕성의 상실을 부추기는 낭비와 향락 퇴폐풍조의 사회상, 향락 산업에 연간 5조원의 돈이 뿌려지고 있다. 사람이 돈과 쾌락의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사회는 구성원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할 사회이며, 모두가 공범이요, 우리 모두가 피해자 일 수 있다.
자신의 정체감을 찾지 못하고 그 무엇에 의존하는 심리적 공허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중독’이라는 병이다. 중독이란 동반 의존적 인격 장애, 경계의 장애를 말하는데 중독은 가족의 병으로서 중독자들로 인해 고통 받는 가족들 그리고 이웃, 사회는 동반의존이라는 환경에 매여 불행, 절망, 황폐함으로 함께 고통 받는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중독자가 생겨나는 가정과 사회의 배경은 ‘믿지마라, 말하지마라, 느끼지 마라’는 무언의 규칙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중독으로 가는 길은 도피성, 집착성, 쾌락성, 우선주의성, 자기부정성으로 본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중독에 대해 부인하지만 충동의 여부는 대체로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갈망’과 ‘조절능력의 상실’이다. 자신들의 병리적인 행위를 보존하기 위해서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d여기는 것을 기꺼이 희생하기까지 한다.
중독자는 친구, 가정, 직장이라는 현실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점진적인 단계를 가지면서 중독을 탐닉하게 되는 은밀한 삶은 그의 공적 삶보다 더욱 실제가 되어짐으로써 중독자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되어 이중적인 생활을 하게 되고, 그 수치심을 알지만 쉽게 떨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중독은 교묘하게 속이고 좌절감을 주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 사람의 삶의 이력을 황폐화 시피고 가까운 관계를 깨뜨리며, 추방자가 되게 하고, 법정으로 가게하며, 파산케하며, 마지막으로 생명까지 포기하게 한다.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윤리가 이기에 이성과 균형감각으로 이룰 수 있는 성숙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도 포기함으로 역기능 가정이 생기고 먹이사슬처럼 역기능 국가를 낳고 전쟁과 테러는 끊임없을 것이며 역기능적 구조의 세계로 자멸을 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중독은 ‘화학물질중독’과 ‘행위중독’이 있기에 치료에는 약물치료도 필요하지만 심리적 치료가 더욱 필요하다. 우리 모두 나 자신을 돌아보고 분수에 넘치는 것들을 조절하는 지혜를 가지는 것이 ‘중독성’을 예방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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