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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말·말·말
기사입력: 2005/06/01 [14:24]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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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언어학자는 말을 존재의 집이라고 정의한다.
 
그 이유는 언어 속에는 자신의 개념이 담겨있어 자기 인상 . 자기표현 . 자기모습을 인지하는 것으로서 말은 한 인간의 현실성을 빚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은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이 보이지만 마음으로 부터나온다.

그래서 말은 곧 사람의 인격이며 현실적 유형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 진실이 담긴 언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있다.

자기 얼굴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바꾸는 희랍의 신 프로테우스처럼 자기 마음대로 말을 함으로써 책임 없는 자유를 주장하는 파괴적 말이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상식과 양심이 다수의 힘과 횡포에의한 큰 목소리로 인해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말은 본질적으로 제약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이 언어를 가지고 경작해온 것이 대체 무엇일까 ?
 
허위와 유혹 . 궤변과 능변 . 끝없는 변명들 . 지치도록 화려한 수사와 공허한 웅변 . 욕망과 열등감이라는 위선이 담즙을 토해내듯 말의 용렬함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언론의 도마위에 오르는 실체는 바로 노 대통령 자신의 무분별한 언행에 있다. 좌충우돌하는 말속에 모든 불안과 혼란의 본질이 담겨져 있는데 만나는 대상마다 말이 바뀐다면 어느 국민이 대통령을 신뢰 할까? 대통령은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삶 자체를 책임지고 있는한나라의 최고 수장이다. .
 
책임도 못질 약속을 하고도 크게 죄책감을 못 느끼거나 뉘우치는 빛도 없는 것은 사고와 감정이 분리돼 있어서 생각에 따라 감정이 따라가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신 체계 위험한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에게 불가피한 자기 방어수단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생각과 감정의 분리는 어느 의미에서 대단히 유용한 자기 방어적 모습이지만 한편으로 만일의 사태에 대해 준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설마하는 안일한 생각을 갖게한다.
 
이것은 말로만 들었지 실제 위험한 상황을 체험하지 못했으므로 생각과 감정이 분열되는 자기과정의 한 단면인 것이다.

풍랑노도에 흔들리고 난 후에야 언어의 중요성을 느끼지만 그때는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후가 된다.
 
사람은 말로써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는데 그 사람의 마음속에 내재된 말의 현실대로 그 인격의 유형대로 사람은 관계를 형성하게되고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내게 된다. .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많이 거칠어지고 있는데에 비례해서 그러면 나의 삶도 거칠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의 모든 경향이 험악해지고 있다.
 
누가 이사회를 이렇게 난폭하게 만들고 있는가?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들, 부모의 말씀이든 스승의 말씀이든 그 누구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않는 이유 없는 반항, 도덕 부재의 삶을 만드는 것은 말에 있다는 것이다.

언어에 대해 어떤 신뢰나 약속도 , 보증이나 향기도 없는 허위와 가정투성인 우리의 공허한 말을 버리고 일점일획까지도 완전하게 성취하기 위해 존재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믿음이 있는 사회가 절실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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