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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운의재발견
태화루 자리 로얄호텔 요정으로 인기
장사꾼들 손들고 나가자 터가 세다는 소문도
기사입력: 2008/10/09 [15:57]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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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운편집이사
옛날 태화루가 있었던 마을로 알려진 태화동은 지금은 울산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태화동은 6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 마을 그대로였다.
  우선 교통만 해도 이곳에 나루가 있었지만 이 나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당시 태화강에는 나루가 학성공원 쪽과 태화동 두 곳에 있었다.
  그러나 태화동 나루는 학성공원 나루에 비해 이용자가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민가가 대부분 학성공원 쪽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태화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학성공원 쪽에 많았다.
  당시 배를 타는 고객들은 대부분 학생들이었는데 학교 역시 지금 울산 문화방송이 있는 인근에 많았기 때문에 자연히 학성공원 쪽 나루가 붐볐다.
  이처럼 인파에서 학성공원 쪽에 비해 뒤졌던 태화동에 인구가 모여들게 된 것은 나루 위에 태화교가 건립되면서다.  태화나루 뱃길 위로 태화교가 준공된 것이 65년이다. 그러나 시공회사에서 다리 공사를 하기 전에  먼저 물막이를 만들어 놓고 공사를 했기 때문에 옛날 나룻배를 이용한 사람들은 다리가 세워지기 전 물막이를 위해 만들어 놓은 방둑을 통해 태화강을 넘어 다녔다.
  다리가 생기면서 자연 사람들이 태화동으로 모여들게 되었고 이들을 상대로 한 장사꾼도 늘어나게 되었다. 이중에서도 로얄예식장 자리에 세워졌던 로얄호텔은 당시만 해도 울산에서는 고급 요정의 역할을 했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호텔 하면 숙박을 생각하게 되지만 그 때만해도 로얄 호텔은 말이 호텔이지 숙박 보다는 고급 술을 파는 요정의 역할을 했다. 태화교가 건립되면서 이 호텔은 손님들이 많아 한 때는 성업을 이루었다. 그러나 70년대 초반에 들어서 호텔 주인이 돌아가고 장사도 잘되지 않아 결국 70년대 중반이 되면 이 자리에 로얄예식장이 들어서게 된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은 고급 요정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되자 이 자리가 개인 사업을 하기에는 터가 세다고 말들을 했다. 
  실제로 이 지역은 로얄 호텔이 들어서기 전에도 젊은이들이 자살을 하는 등 나쁜 일들이 자주 일어나 터가 세다는 말을 들었다.
  60년대 초반만 해도 로얄호텔이 들어서기 전 이곳에는 두부공장이 있었고 또 태화강에서 잡은 재첩으로 재첩국을 끓여 파는 장사꾼들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태화동은 도심의 외각이 되어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태화동 사람들을 상대로 열심히 장사를 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큰돈을 벌지 못하고 이곳을 떠났다.
  이중에서도  용금소 사건'은 당시 태화동에 살았던 오늘의 50대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큰 사건이었다.
  어느날 태화동에 살았던 중 3 여학생이 이곳에서 목을 매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실제로 당시만 해도 태화동 인근에서는 생활고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 대부분은 태화루가 있었던 장소로 알려진 이곳으로 와 태화강에 걸쳐 있는 소나무에 목을 매어 죽곤 했다. 그런데 중 3학생이 죽은 것은 어머니가 고교 진학을 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만 해도 볼 것이 없어서인지 이런 자살 사건이 나면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여와 구경을 했다.
  그날도 많은 사람들이 태화강가로 나와 물에 빠진 처녀를 구해 올리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런데 처녀의 시체를 건지러 강에 들어갔던 머구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심에 찬 얼굴로 나왔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서야 다시 강으로 들어가 처녀의 시체를 건져 나왔다.
  그러면서 머구리는 "전날 강에 들어가 시체를 찾다 보니 시체가 용금소 바위 위에 누워 있었는데 구렁이가 이 시체를 칭칭 감고 있었고 시체 뒤로 긴 작대를 든 영감이 나타나  지금은 구렁이가 감고 있으니 내일 시체를 인양해 가라'고 명령을 하는 바람에 전날 건지지 못하고 다음날 건지게 되었다"고 말해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태화강 가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았던 E모씨(56)는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온몸이 오싹해진다"면서 "그때는 이런 꿈같은 얘기가 태화강을 중심으로 많이 일어나곤 했다"고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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