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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운의재발견
태화루 멸실 내용 밝혀줄 역사서 없어
발굴 조사 통해 정확한 위치 규명 될 듯
기사입력: 2008/10/06 [08:44]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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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운편집이사
태사지 부도의 발견 장소가 확실하지 않듯 태화루가 언제 없어졌는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태화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으로 전해 오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구체적인 역사서의 기록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다. 다만 임진왜란 때 울산의 많은 문화재, 특히 사찰과 서원등 건축물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태화루 역시 이 때 왜병의 방화로 소실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태화루의 멸실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300여년이 지난 1902년 간행된 『울산읍지』에서다. 이 책은  태화루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병화 중 누군가가 편액을 옮겨 보관했다가 훗날 객사 남루에 걸었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이 보다 뒤에 발간된 『흥려승람』에도 태화루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편액은 옮겨 객관문 위에 달았다는 내용의 글이 실려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책 보다 훨씬 앞서 나온 역사서에 태화루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조 25년(1749)에 발간된 『학성지』는 시대 적으로 보면 울산 읍지보다 150여년 앞서 발간되었다.  그러니까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150여년만에 발간되었지만 이 책에도  태화루가 지금은 없다'고만 되어있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따라서 역사학자들은 태화루가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해 불탔다면 이 책에 분명히 왜병에 의해 소실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인데 그렇지 않을 것을 두고 임진왜란 소실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따라서 태화루의 흔적에 대해서는 역사서와 또 태화루가 있을 때 태화루와 관련된 글을 남긴 시인과 묵객들의 글을 참고로 하는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다행히 태화루는 사라졌지만 태화루와 관련 된 문헌 기록은 아직 많이 전해오고 있다. 『고려사』에는 성종 16년(997) 가을 8월 성종이 동경(경주)에 행차해 군신들에게 향연을 베풀고 9월에는 흥례부에 와 태화루에 나아가 군신들을 대접했다는 얘기가 전해 오고 있다. 이 때 왕이 바다에서 큰 고기를 잡았으나 병환이 생겨 동경으로 돌아왔다고 되어 있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명종 때 김극기가 태화사를 보면서 쓴 시가 담겨 있다. 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고요한 수풀 아래 외로운 절/흰 구름 언덕위에 높이 기대었네/북으로 산이 두르고 남으로는 푸른물결이 휘감네.
  고려말 조선 초에 살았던 권근은 기문에 이르기를  "신라 때 비로소 절을 이 북쪽 언덕에 세우고 태화라 했는데. 서쪽과 남쪽으로 누각을 이루었고 아래로는 못에 임했으며, 산은 들 밖으로 비껴나가고 바다는 하늘가에 연해 있어 여기 올라가 구경하는 아름다운 경치가 기승이라고 했다.
  조선조에 들어와 서거정 역시 태화루 중신기에서 "강을 건너자 배를 버리고  지팡이에 의지해 누각 아래에 이르니"라면서 "태화루가 층층으로 언덕과  끊어진 절벽위에 높다랗게 서 있어 푸른 물결을 내려다보고 있는 지라 그 웅장함을 사랑해 물으니 태화루라고 답한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이외에도 태화루의 위치에 대해서는 『영남읍지』가  부의 서쪽 5리 황룡연 위에 있었다'고 해 놓고 있고,  『울산읍지』는  부의 서쪽 2리 황룡연 북쪽 돌 위에 있었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또 『흥려승람』 역시  부의 서쪽 2리 황룡연 북쪽 돌 위에 있었다'고 해 놓고 있어 위치가 거의 비슷하다. 
  이를 토대로 울산시는 태화루 복원 기본 계획을 세우면서 지표조사를 했는데 2004년에는 울산발전연구원에서 울산태화사지태화루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통해 태화루지로 추정되는 로얄예식장 부지와 주변 민가에 대한 고고학적 지표조사가 실시되었는데 그 결과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걸친 와편이 수습되어 보다 실증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향후 이 부지에 대한 토지 보상이 끝나고 건물이 철거 된 후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가 시작되면 보다 많은 고고학적 자료가 얻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 로얄예식장이 옛 태화루지였나 그렇지 않나 하는 것은 앞으로 있을 발굴 조사에서 더욱 정확하게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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