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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운의재발견
태화사지 찾기는 태화루 복원의 첫 걸음
서진길 전 원장 "중앙예산 다른사업 전용 가슴아파"
기사입력: 2008/09/04 [15:09]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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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운 편집이사
▲     태화사가 있었던 마을로 추정되는 태화동에 요즘들어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 옛모습을 찾기가 힘들다. 
태화사가 있었던 지역으로 알려진 태화동은 최근 들어 많이 변했다. 60년대 까지만 해도 이 일대는 가옥이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울산장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장군들이 현재 동광병원이 자리 잡고 있는 곳에서 도적들을 만나 돈을 털리기도 했다.
그러나 태화동은 그동안 울산에서 가장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주택 밀집 지역이 되었다.
특히 70년대 후반부터 이 지역에는 당시만 해도 울산 유일의 종합병원이었던 동강병원이 들어서 그동안 이 지역을 지켜왔던 원주민들이 대부분 떠나 옛 지명을 찾아내고 변형된 지형을 확인하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태화사지로 추정되는 곳이 지금까지 태화동으로 불리고 있고 또 인근 유곡동에는 아직 ‘절터골’이라는 마을 이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현재 관음사가 있는 사찰 골짜기 역시 ‘부도골’로 불리고 있는데 이곳에서 태화사지 12지신상이 발견되었다.
사찰지의 형태가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 역시 태화사지를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태화사지가 건립되었을 신라 중기에는 가람이 탑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중문이 그리고 북쪽에는 금당과 강당이 일직선상에 서는 형태였다. 그리고 이런 형태는 통일신라시대 쌍탑이 들어설 때까지 거의 비슷했다. 따라서 태화사지의 경우 탑지나 중문 혹은 금당지 한곳만 발견되어도 사찰 전체의 모양과 규모를 규명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물론 울산 고찰 중에는 사찰의 이런 일반 형태를 벗어나 지어진 것도 적지 않다. 우선 금당 배치만 해도 경주에 있는 대부분의 신라 고찰이 남향인데 반해 울산 사찰 중에는 금당 자체가 다른 방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황룡사·불국사·감은사 등 신라의 대표적인 사찰은 금당이 모두 남향이다. 그러나 울산을 대표하는 신라 사찰로 볼 수 있는 운흥사와 간월사 그리고 신흥사의 금당은 특이하게도 모두 남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물론 이들 사찰들이 모두 평지 가람이 아니고 산지 가람이라고 볼 때 금당의 위치가 일반 평지 가람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태화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태화동 인근은 이들 사찰이 들어섰던 자리처럼 산지가 아니어서 태화사는 일반 가람의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건립되었을 것 같다.
태화사지 찾기는 태화루 복원을 위한 첫걸음이다.
울산에는 유적이 많다. 이중 태화사지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태화루는 울산시민의 정서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역사적 산물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시민들 대부분은 태화루 복원이 울산의 역사를 살리고 전통을 계승할 수 있는 사업으로 생각했다.
울산시민들이 태화루 복원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은 태화루가 들어섰던 장소로 알려진 곳에 대형 예식장이 들어서면서 부터다.
70년대 태화동 일대에 부지 정리 사업을 벌였던 김모씨(75)는 “ 울산의 많은 사람들이 이 때 이미 이곳이 울산의 귀중한 유적지라는 것을 알고 공원지역으로 묶어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당시 이모시장에게 이 지역을 공원지역으로 남겨두자고 건의했지만 이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울산시가 요즘 들어 이 지역을 매입하는데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가슴 아픕니다.”고 말한다.
그동안 울산시는 태화루의 실체 규명과 복원을 여러 번 시도했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1994년 울산 문화원 중심으로 이루어진 「태화루 복원추진위원회」다. 추진위원회는 태화루 복원을 위해 고문헌을 검토하고 부지 선정을 위한 예산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벌였다.
이들의 노력으로 이 사업을 위한 중앙 예산이 일부 배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업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울산시의 예산 확보 역시 필요했으나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추진위원회 활동이 부진해지고 중앙에서 내려온 예산 역시 다른 사업으로 전용되었다.
당시 이 사업을 앞장 서 추진했던 서진길 전 울산문화원장은 “울산시가 재정이 다소 어렵더라도 당시 이 사업을 시작했다면 요즘처럼 부지선정에 많은 돈을 퍼 붓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울산시민들이 지금쯤은 자긍심을 갖고 복원된 태화루에서 각종 문화 행사를 개최할 수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당시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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