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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운의재발견
신라시대 호국사찰로 지어져
황룡사, 통도사와 달리 진신사리 아직 못 찾아
기사입력: 2008/08/27 [15:11]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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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운 편집이사
   
황룡사와 통도사 진신사리는 발견이 되었지만 태화사 사리는 아직 발견되지 않아서 아쉬움을 준다.(사진은 진신사리가 보관되어 있는 통도사 사리탑) 
 선덕여왕 때 세워졌던 것으로 알려진 태화사는 과연 어떤 절이었을까. 신라시대에는 사찰이 많았다. 역사서를 보면 경주 남산에는 사찰이 많아 사찰에서 밤 행사를 가질 때면 불빛이 꽃불처럼 아름다웠다고 되어 있다.
  또 왕경에는 기러기가 무리를 지어 날아가듯 사찰과 탑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 시대 3대 사찰로는 황룡사, 사천왕사, 감은사를 꼽는다. 흔히들 불국사를 신라의 대표적인 사찰로 알고 있지만 불국사는 신라 3대 사찰에 들지 못한다.
  왜냐하면 당시 사찰은 호국이 중요했기 때문에  황룡사, 사천왕사, 감은사가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지어진 사찰인데 반해 불국사는 호국 보다는 신라 김씨 왕조를 위해 지어진 사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라 3대 사찰 중 사천왕사와 감은사는 통일 이후에 지어진 사찰이다. 따라서 통일 이전까지만 해도 신라의 3대 사찰하면 황룡사와 태화사 그리고 통도사였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통도사 서운암 주지 성파스님은 태화사의 역할과 규모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성파스님은 자장율사가 당시 당나라에서 가져 온 진신사리를 황룡사와 태화사 그리고 통도사에 나누어 보관토록 했다는 것은 당시 이들 사찰이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성파스님은 당시 이들 3대 사찰의 역할에 대해 황룡사가 왕족을 위해 건립되었다면 통도사가 서민들을 위한 사찰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태화사는 누구를 위해 건립되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 당시 태화사가 울산에 자리를 잡았다는 자체가 호국을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당시 울산에는 왜구의 침입이 심했고 따라서 울산에도 왜구를 쫓아내기 위한 불심이 필요해 태화사를 짓게 되었을 것이라고 성파스님은 보고 있다.
  실제로 당시 자장 율사가 가져왔다는 진신사리는 태화사에 보관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후 모두 발견되었다.
  통도사 진신사리는 지금도 금강계단에 있어 통도사가 해인사, 송광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불보사찰이 되었다. 황룡사의 진신사리는 오랫동안 그 흔적을 알 수 없었으나 해방 후 황룡사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구층탑 심초석 아래에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후 황룡사 진신사리는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여러 번 전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중 유일하게 아직 진시사리를 찾지 못한 것이 태화사에 보관했다는 사리다. 태화사지는 사리만 찾지 못한 것이 아니고 절터도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태화루와 관련된 역사를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태화사지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다.
   태화사지를 찾아낸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태화사는 이처럼 건립에 대한 기록만 있을 뿐 절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울산을 방문했던 많은 문객들이 울산의 아름다운 절경을 노래하고 태화루에 대한 언급은 하고 있지만 태화사에 대한 글을 남긴 시인과 묵객은 없다.
  이 점 태화사와 비슷한 시대에 세워진 황룡사와 다르다. 황룡사 구층탑의 경우 고려시대에 문인들이 남긴 글이 많아 당시의 탑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태화사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태화사가 있었던 장소로 추정되는 울산 태화동이 그동안 너무 변한 것 역시 태화사지를 찾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사찰이 건립 될 당시만 해도 태화동은 태화강변 지역이 되어 주택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울산 역사서를 보면  이 지역에는 울산 박 씨들이 처음으로 거주하게 되는데 그 때가 18세기 말이다. 실제로 오늘날 동부 아파트가 들어선 지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기(新基) 마을'로 불리었는데 이것은  새로운 마을' 이라는 뜻으로 과거에 이 인근에 인가가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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