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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운의재발견
詩 통해 당의 찬란한 문학 영역 넓혀
이백의 호탕한 품성 反해 두보 어두운 시대상 표현
기사입력: 2008/07/10 [18:14]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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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운 편집이사
  
당나라 인물 중 시선(詩仙) 이백과 시성(詩聖)두보를 빼 놓을 수 없다. 이들은 모두 당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존경받고 있지만 그들의 삶에는 차이가 많았다.
   이들은 현종 때 주로 활동했다. 그러나 이들이 시인으로 존경 받고 활동 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 배경에는 정치적 안정과 문사를 중용해 문학의 영역을 넓혔던 태종이 있다. 당나라의 찬란한 문화가 중국 역사의 전면에 나타난 것이 태종을 전후해서다.
  신선처럼 호탕한 인품을 가졌던 이백은 한국인들에게는  태백(太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은 아마 우리가 어릴 때부터 불렀던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하는 동요 때문이라 볼 수 있다. 태백은 그의 어머니가 태백성(金星)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꾼 후 그를 낳았다고 해 붙여졌다고 전해 온다.
  이백은 나이로 보면 두보 보다 10살 위였다. 이백은 부유한 상인 가계에서 태어난데 반해 두보는 빈궁한 관료의 집에서 나고 자랐다.
  두 사람은 아주 대조적인 삶과 시 세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둘 모두 방랑자가 되어 중국 대륙을 주유할 때는 서로 상대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둘은 중국 산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노래했고 어두운 시대를 극복하려는 애국적 열망도 함께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조국 발전에 기여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단의 관직에 오르기도 했지만 이를 치유하기에는 당시 당나라가 너무 큰 병을 앓고 있었다. 대신 이들은 당시 사회에서 시를 통해 민중을 깨우치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두 사람의 시에는 당시의 아픔이 잘 그려져 있다. 이백은 타고난 자유분방함으로 이런 어두운 사회를 넘어 인간의 기쁨을 노래했다. 평생  달과 술'을 사랑했던 이백은 죽을 때도 물속에 비친 달을 건지려다 죽었다는 낭만적인 전설을 남겼다. 그러나 말년의 그는 이처럼 호쾌한 생활만 한 것이 아니었다.
  두보는 평생 방랑생활을 하면서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사실주의적 시를 통해 조국과 민중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표현했다. 따라서 두보의 시에는 이백과는 대조적으로 호쾌함 보다는 우울함이 담겨 있다.
  그의 대표적인 시  춘망'에는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나라는 망하여도 산과 강은 여전하고/성안에 봄이 오니 초목이 우거졌도다/시국을 생각하니 꽃도 눈망울을 뿌리게 하고/이별을 한탄하니 새도 마음을 놀라게 한다/ 전란의 봉화 불 3달이나 계속되니/집에서 오는 소식은 만금과 같고/흰 머리카락은 긁을수록 짧아져/ 이제는 비녀도 꽂지 못하겠구나.
 
  이 시는 전쟁에 쫓겨 다니면서 가족 소식을 그리워하는 두보의 심사와 또 전쟁의 포화 속에서 속절없이 늙어가는 자신의 애처로움을 그려 놓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이백은 낙천적인 성품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술을 좋아했던 이백이 현종의 부름을 받아 궁중에 들어 온 것은 그의 나이 43세 때였다. 이 때 현종은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양귀비에 빠져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신선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백은 궁정시인으로 화려한 생활을 즐겼다.
  당시 궁궐 침향정에는 모란꽃이 아름답게 피어 현종이 양귀비와 함께 꽃구경을 갔다. 여흥을 돋우기 위해 이 때 현종은 이백을 불렀다. 이 백은 간밤에 마신 술이 깨어나지 않았지만 비틀거리면서도 황제 앞으로 나아가 시를 지어 올려야 했다.
  아래 시는 그가 취중에서 현종의 부름을 받은 가운데 지은 시다.
 
  모란꽃과 미인이 서로 반기니/임금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네/ 끝없는 한도 봄바람에 눈처럼 녹아/침향전 북쪽 난간에 기대었어라.
 
   술을 좋아했던 그는 술과 관련된 시가 많다.  한말의 술, 시 백편'이라는 시를 보면 그가 얼마나 술을 좋아했고 또 호탕한 인물인가가 잘 그려져 있다.
 
  하늘이 만일 술을 즐기지 않으면/ 어찌 하늘에 주성이 있으며/땅이 또한 술을 즐기지 않으면/어찌 주천이 있으리요/천지가 마냥 즐기었거늘/ 애주를 어찌 부끄러워하리/청주는 이미 성인에 비하고/탁주는 현인에 비하였으니/성현도 이미 마시었던 것을/헛되이 신선을 구하오리/석잔에 대도에 통하고/한 말에 자연에 합하거니/모두 취해 얻는 즐거움을/깨인 이에게 이르지 말아라
 
    양귀비와 사랑에 빠진 현종이 이임보와 고력사에게 정치를 맡기는 바람에 나라는 어지러워지고 있었지만 이 때가 이백에게는 전성기였다.
  성질이 호탕했던 그는 궁중에서 현종의 총신 고력사와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특히 그는 시를 통해 고력사를 나무라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고력사의 미움을 받아 그는 궁중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는 이 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호방한 정신세계는 그대로 갖고 있어 정신적 여유를 갖고 시를 많이 썼다. 그러나 그의 나이 55세가 되었을 때 안녹산 난이 일어나 그 역시 전란 속에 살아야 했는데 이 때 황태자들의 싸움에 몰려 죽어야 했다. 이런 그의 삶을 보면 그가 달을 좋아해 배를 타고 강을 거닐다 강 속에 잠긴 달을 건지기 위해 강으로 들어가 익사했다는 전설은 사실과는 먼 얘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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