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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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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산 박화자 (서예가)
‘제 34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최우수상 수상, 울산 최초
기사입력: 2015/07/08 [14:54]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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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덕순 편집국장

초인적인 정신력과 초능력적인 훈련에 의한 성취 이뤄내
“노력하는 자만이 최고가 될 수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울산시 서예대전 특선6회 수상, 초대작가 비롯...수많은 수상과 초대작가 활약 

▲ 국전 최우수상 작품 앞에 선 작가     © UWNEWS
울산 문화예술계가 뒤집힐 큰 사건이 있었다. 지난 6월 19일, ‘제 34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서예부문에서 울산 최초로 최우수상 수상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런 경사를 두고 조용히 자신의 정진에만 힘을 쏟고 있는 여류 서예가가 있어 만나보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생각으로 오로지 글 쓰는 일에만 빠져 20년 넘는 세월을 산 것 같습니다. 좋아서 해온 일인데...이런 큰 영광이 주어져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어깨가 무겁습니다“라고 겸손해 한다. 

축하드리고...이런 큰 상을 받고 울산문화예술계가 조용한 것이 이상하다고 했더니 박화자(1962년 생) 서예가는 말한다. 문화예술인들, 서예협회의 지인 도반들과 식사를 하며 큰 격려와 축하를 받았다고 한다.

“오늘이 있기까지 가르쳐주신 선생님들과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해준 가족들(회사원인 남편 김기창, 딸, 아들)께 감사드렸습니다. 지인들과 선, 후배에게는 알리고 축하를 많이 받았습니다”

1982년에 만원 김성모 선생께 서예를 배우기 시작해서 동산 이수옥 선생과 중원 지남례 선생께는 한글을, 우치 손태원 선생께는 한문을, 남중모 선생께는 문인화를 사사받았다고 한다. 이런 훌륭한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있어서 큰 상을 받았다고 절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그를 가르친 서예가들은 박화자 제자의 배우겠다는 열정과 성실함, 인간 됨됨이가 울산서예계 뿐 아니라 문화계에 한 획을 그을만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저렇게 해라며 힘에 부치는 숙제를 주었을 때, 단 한 번도 “못 합니다”란 말없이 “예 알겠습니다”며 그 숙제를 다 해냈다고 기억한다.

울산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붓글씨에 관심이 많아, 글 쓰는 일이 좋았고 배우는 일이 좋아서 밥 먹고 잠자는 일 외에는 글 쓰고 배우는 일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배우는 일에 게으르지 않아 서예선생님들한테 배우는 외에도 지도자의 과정을 공부하며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서예문인화 최고위과정을 수료해 서예이론을 이수했다.


▲ 한 작품을 위해 쓴 80장의 습자지     © UWNEWS
 
무엇보다 20년 넘는 세월을 붓놀음과 정신의 희노애락에 빠져 뼈가 굳어지는 고통을 준 자신의 육신에 보상을 할 수 있어 그나마 기쁘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은 쉽게 하지만, 그동안 정진의 길이 얼마나 처절 했을까?를 짐작케 한다. 하루 붓을 잡으면 평균 2미터 길이의 화선지 1장 쓰기도 벅차다고 하는데 그는 20장씩은 써왔으니 무릎이며 허리 다리며, 손과 팔이 온전한 곳이 없다고 한다.

그 노력의 폭과 깊이가 이러하니 가히 고행의 길이라 할만치 각고의 노력으로 이런 경지까지 도달했나보다. 밥 먹고 잠자는 일, 꼭 해야 할 일 외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글 쓰는 일에만 시간을 썼다고 한다. 그 세월이 20여년이니...다른 사람들이 흉내도 내기 어려울 정도.

그를 아는 주위에서는 말한다. 초인적인 정신력과 초능력적인 훈련에 의한 성취라고.

한 분야에서 최고를 이루는 길은 타고난 재능을 쉬지 않고 담금질하는 훈련이라고 할까?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다는 빙상의 김연아 선수 또한 연습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는데, 박화자 서예가 또한 그에 못지않다고 지인들은 말한다. 

박화자 서예가, 그의 수상경력과 이력은 그의 실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음은 그의 노력이 말해주고 있지만 역시 대단한 실력인정을 받아왔음을 알 수 있다.

1982년 만원서실에서 서예를 배우기 시작해서 울산여성회관에 발을 디딘 후, 동산 이수옥 선생에게 한글을 배웠다고 한다. 2005년 통일대전에서 한문으로 통일부장관상을 수상한 후 그의 실력은 널리 인정받으며 일취월장하게 되었다. 울산광역시 서예대전 특선6회 수상, 초대작가를 비롯해 국제유교문화 서예대전 우수상 초대작가, 대한민국통일미술대전 통일부장관상 초대작가, 대한민국 영일만서예대전 대상 수상과 초대작가, 울산광역시 미술대전 우수상 초대작가, 전국휘호대회 우수상 및 초대작가, 경상남도 미술대전 대상 수상 등 전국의 큰 대회에서 그의 실력은 높이 인정받으며, 각 대회마다 어렵다는 초대작가로 추천받아 활약하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최고의 실력과 권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에서 특선과 입선 3회를 거쳐 드디어 최우수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울산의 자랑이자 울산여성들과 울산문화예술계의 표상이 되었다.

“노력하는 자만이 최고가 될 수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그의 신념대로 드디어 박화자 서예가는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으나, 흔들림 없이 후진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길을 정진해가겠다며 겸손한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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