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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단상
어버이 날에 어버이를 생각한다.
기사입력: 2009/05/12 [11:37]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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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덕순 본지발행인
어린 시절 어버이날이 돌아오면 명절을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빨간 카네이션꽃을 만들며 부모님을 다시 생각하곤 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빨간 카네이션꽃,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면 흰 카네이션꽃을 달아야 했지요. 요즘 같으면 굳이 꽃을 달지도 않겠지만 당시는 꽃을 다는 것이 자식의 의무인 양 지켜지는 일이어서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면 슬퍼도 하얀 카네이션을 달아야 했었는데 이제 세월이 흘러 꽃을 꽂아드릴 부모님도 계시지 않으니 ‘나는 하얀 카네이션을 달아야 하는구나’ 그리고  빨간 꽃을 달 자식들을 생각하며 만감이 교차됩니다.

어버이날에 어버이를 생각합니다.
최근 한 신문사에서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생 1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보고를 보고 씁쓸했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그려. 부모님이 생존해있기를 원하는 나이(희망 생존나이)를 묻는 질문이었지요. 요즘 세태에서나 가능한 질문이고 현실적인 답변이기도 했겠지만 답변비율을 두고 부모세대들은 두고두고 서운해 하고 분개하기도 하며 한동안 회자되더군요.
 
글쎄요...? 부모님이 생존해 있기를 희망하는 나이는 65세가 가장 높아 40%, 잘 모르겠다가 8%정도여서 결론적으로 48%가 부모님이 생존해 있기를 원하는 나이가 65세 정도라는 결론이었지요. 사안이 이러하니 나이든 부모의 심정으로는 쓴 소태를 씹은 맛이겠지요. 한동안 토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었지만 어쩌겠습니까?  옛말에 사랑은 내리사랑이어서 위로 거슬러 올라가지는 못하니 아래로 흐를 수밖에 없겠지요. 우리 옛 속담에 “부모가 온 효자가 되어야 자식이 반 효자”라는 말이 있듯 자식은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사랑하는 것, 효도하는 것 모두 자신을 위한 길입니다. 효도하면 그대로 받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 참에 부모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자식들에게 이렇게 하라는 훈계가 얼마나 먹히겠으며 저렇게 하지 말라는 만류를 그대로 들을 자식들도 많지 않은 시대가 현세대입니다. 효교육은 단 한가지,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밖엔 없습니다.

 나이들어 대접받고 싶으면 받고 싶은 대로 실천하면 됩니다. 인간은 본대로 들은대로, 배운대로 합니다. 부모에게 효도한 자식은 그대로 보고배운 그의 자식에 의해 대접을 받게 되지요. 내리사랑이라고 자식을 애지중지하다 보면 부모에게 소홀해지고 그 자식이 자라면서 받은 대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것이고 부모에게 했던 행동 그대로 자신의 아이들에게서 받게 됩니다. 인지상정이며 인과응보의 원리입니다.

옛말에 자식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버이를 섬기면 극진한 효도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내리사랑이어서 자식에 대한 부모사랑은,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을 능가하지요. 고전 ‘후한서’에 전해오는 효에 관한 일화를 보면 후한시대에 곽거라는 가난한 선비가 아내, 아들 하나에 노모를 모시고  살았는데 너무 가난해 끼니를 이을 수 없었는데 먹을 것이 생기면 노모가 손자에게 주곤 하는 것을 보다 못해 노모를 살리기 위해 자식을 구덩이에 묻어버리려고 작정을 했지요. 해서 땅을 파니 그 속에서 커다란 금솥이 나왔다는 일화는 효를 일깨워 주기 위한 예이겠지요. 오월 5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이지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진정 소중하다면 부모께 효도하는 모습으로 교육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기 때문이지요 필자 또한 효도하고자 하나 돌아가시고 안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회한에 잠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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