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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근
서어나무의 가치성
기사입력: 2018/07/27 [10:58]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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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석근 前 울산시인협회장/수필가     ©UWNEWS

지난 1970년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일본 동경에서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전일본 국풍분재전(國楓盆栽展)이 열렸다. 이곳에 부산의 분재인이던 국내에서 손꼽히던 분재인 여럿이 참관을 하러갔다. 당시 부산의 몇 분재인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분재인들이었다.

 

70년대 초반 부터 막 분재 열풍이 일어나기 시작 했으나 그렇게 대중화 되지는 못했다. 가장 선도적으로 근대분재에 입문한 사람은 초등교직에 있던 손상현선생이었고, 그 문하생이던 문용택, 김기환, 장상철 등이 국풍전 참관을 하게 되었다. 첫 날, 오전 10시경 전시장이 개장되면서 장내는 관람객으로 혼잡했다.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정교하게 다듬어진 분재들이 선을 보였고 처음 대하는 나무들도 많았다.

 

일본 특산종인 두송, 영상홍, 가문비나무는 발걸음을 붙잡았다. 이뿐이 아니고 잡목류인 아주 손톱보다 작은 잎을 촘촘히 가지에 달고 잘 손질된 처음 보는 잡목류에 그만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팻말의 나무이름을 보는 순간 깜짝놀랐다. ‘조선 소사나무’ 라고 적혀 있었기때문이다. 넉을 놓고 바라보다 주최측에 다가 가서 물어 보았다. “저 조선 소사나무란 나무의 출처가 어딥니까?” 주최측의 대답에 일행은 다시 놀랐다. “저 나무는 부산의 인근 백양산에서 산채한 것이다.” 고 했기 때문이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일행은 3일간 국풍전 구경을 떠났던 일정을 취소하고 다음 날 곧 바로 부산으로 돌아와서 배낭을 메고 정관면에 속했던 백양산에 올랐다. 당시 백양산은 부산시에서 운영하는 공원묘지가 조성되어 있어서 접근하기가 쉬웠다. 아랫쪽은 소나무가 울창한 계곡이었지만 능선 이룬 윗쪽은 잡목으로 뒤덮혀 있었다. 그 잡목군의 대다수가 소사나무 군락지였다.

 

 근대분재의 선구자이기도 한 손상현 선생을 비롯한 일행들은 제각기 분재 소재를 한 두 그루 산채해 돌아왔다. 이 때부터 우리나라의 토종 소사나무 분재가 전국에 알려지면서 보급되었다. 소사나무는 생장력이 뛰어나 메마른 곳에서도 잘자라는 수종으로 남부지방 각처에서 자생지가 확인되면서 1980년대 부터 소사나무 분재 붐이 일기도 했다. 경북의 해안을 낀 기림사 주변 마을 뒷산에서 부터 남해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서식지가 속속 들어났다. 하지만 가장 명품 소재가 많이 나온 곳은 진해 인근의 잔유산 자락이었다. 이곳의 소사나무 소재는 전국에서도 가장 품격있는 모양을 갖춘 명품을 탄생시켰다.

 

 소사나무의 학명은 한 때는 적양목(赤陽木)에 속한다고 하였으나 적양나무의 품종은 따로 분류되는 소사나무의 사촌격인 붉은 빛이 나는 잎과 껍질이 적양목이다. 회색(흰)을 띈 소사나무는 근래에 와서 임학 전문가들이 서어나무로 분류해 부른다. 서어나무는 자작나뭇과로 한자 서목(西木)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서목은 서쪽나라의 뜻인데, 어릴 때도 음지에서 잘 자라는 음수(陰樹)이다. 서어나무가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것도 나무의 특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나라 온대림의 극상림 중 많이 분포하는 대표적인 수종이다. 극상림은 식물사회에서 천이 즉, 같은 장소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뤄지는 식물군집의 변화이며, 이 마지막 단계에서 발달하는 숲을 말한다. 그러므로 서어나무는 다른 나무와의 경쟁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존재인것이다. 소나무는 이 서어나무와의 분포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다. 내한성 역시 매우 강했다. 서어나무는 어느 정도 자라면 회색 줄기에 검은 빛 얼룩이 섞이며, 이런 나무의 줄기는 잘 발달된 근육질 같이 울퉁불퉁하게 돋는다. 이같은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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