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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싶은 남성
강북교육의 총사령탑
기사입력: 2008/11/13 [16:22]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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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일성 주필
    
 북구의 교육 총관리자로 9월 1일 취임한 윤경운 교육장을 만났다.
  보통 체격에 온화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이 안경 너머로 느껴지는 윤 교육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여성신문을 의식한 듯 평교사 시절에 여고에 오랫 동안 근무한 덕에 자신도 모르게 여성 예찬론자가 되어버렸다며 그 당시 자신의 별명이 윤 마담, 윤 언니로 통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윤 교육장은 부임하기 전에 근무했던 동구의 대성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재직 중일 때 흡연, 폭력, 쓰레기가 없는 3무 운동을 펼쳐 주목을 받기도 했던 분이다. 신념을 갖고 꾸준히 3무 운동을 펼쳤더니 학생들의 인성교육은 물론이고 성적까지 쑥쑥 올라가는 것을 목격하고는 희열을 느꼈다는 윤 교육장은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지고 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체험을 했다고 했다.
  윤교육장의 어릴적 꿈도 교육자였다고 했다. 그는 어릴적 꿈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대구사범대학교를 졸업했고 임용 뒤에도 교육자의 정통코스를 밟으며 교육관리자로서의 소양을 쌓았다. 그뿐 아니라 자기 개발이 곧 학생들의 올바른 교육에 직결된다는 것을 깨닫고 교장 임용 후에 문학박사 코스에 도전하여 박사 학위를 딸 만큼 향구파이기도 하다.
  윤 교육장은 역사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올바른 비판은 역사를 알아야 가능하다며 나름대로의 역사관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역사의 영원한 화두는 보수와 개혁이라며 일반적으로 보면 보수를 해야 할 때 개혁을 하면 그 사회가 무너지지만 개혁을 해야 할 때 보수를 해도 그 사회는 무너지지 않는다며 개혁은 급진적이기 보다는 점진적으로 이루어나가야 한다며 교육도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대구 출신인 윤 교육장은 울산에 부임하기 전에는 주로 경남지역에서 근무했다. 마산에 근무하던 그는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된 후  울산으로 전출 갈 교사를 신청 받았는데 그 무렵 울산에 근무하던 친구의 강력한 추천으로 97년 울산으로 전근을 오게 되었다고 했다.
  윤 교육장이 울산에 와서 신정고등학교에 3년차 근무 할 무렵 마침 IMF가 터져 교사들의 정년이 65세에서 62세로 단축되어 많은 교사들이 학교를 떠나게 되자 따라서 많은 승진 대상자가 필요했는데 그 당시 다행히 승진이 되어 오늘이 있었다며 운도 좋았던 것 같다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울산으로 전근 올 무렵 아내와 아이들이 강하게 하여 일 년 가량 기러기 아빠 생활도 했었는데 그의 간곡한 설득으로 울산으로 전근 온 아내는 지금 남구의 선암초등학교 교장이 되어 있는데 요즘은 아내더러 울산에 오기 잘했지 않느냐며 큰 소리 치며 산다고 웃기도 했다.
  부인과 아들 둘을 슬하에 두고 있는 윤 교육장은 큰아들이 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동강병원에서 레지던트 2년차로 근무하고 있고 작은 아들은 현재 미국 뉴신얼바인 대학에 재학중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에게는 초등학교 선생 밖에 못해먹을 인물이라는 평이 최고의 칭찬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윤 교육장은 현재 학부모들이 울산의 교육만족도가 꼴찌니 뭐니 하며 웅성거리고 있지만 1년의 결과를 보려면 농사를 지어야 하고 10년의 결과를 보려면 나무를 심어야 하고 100년의 결과를 보려면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옛말을 상기 시키며 인성교육 위에 학과교육을 가르치고 있는 현재 울산 교육이 곧 결실의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초등학교의 방과후 교육도 주로 특기나 예능위주로 교육시켰지만 자신이 순회하면서 국,영,수 도 같이 병행하여 가르칠 것을 주문하고 있다며 울산의 교육방향은 정확한 길을 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취미로 명작 영화 모으기를 15년 째 하고 있으며 요즘은 오페라에 빠져 그쪽 DVD를 모으고 있는데 아마도 오페라를 보려면 서울이나 대구를 가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건강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건강유지 비결은 별게 아니라 걷기라며 "하루에 한 가지 선한 일을 하고 열사람을 만나서 백 마디 말을 하고 천자를 적고 만보를 걷는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며 재직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여 올바른 강북교육에 열중하다가 퇴임 후에는 교육장 임명 후 그만둔 대학 겸임교수직을 다시 하고 싶은 꿈이 있다는 윤 교육장은 꿈이란 죽는 것 말고는 늦는 법이 없지 않느냐며 천진스럽게 웃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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