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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
10만의 함성, 광화문 광장을 축제의 장으로
'촛불집회현장 ' 또다시 펼쳐진 한바탕 축제의 마당
기사입력: 2008/06/07 [13:49]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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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주 기자
한 사회가 새로운 단계로 변화할 때에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계기를 거치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뜻이 점점 하나로 모여 가다가, 일정한 양을 넘어서면 완전히 새로운 행동으로 변화한다. 과학에서는 임계점(critical point) 이라는 용어를 쓴다. 사회적으로도 임계점은 존재한다.

대부분의 언론은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촛불집회의 첫 시작을 5월 2일로 잡고 있다. 3만의 시민들이 청계광장에 운집했다. 당시 주최측은 1천명을 예상했고, 경찰은 3백명을 예상했다고 한다. 청계광장에 모인 시민들도 스스로 놀랐고, 3만의 외침이 얼마나 큰 울림을 갖는지 체험했다.

▲ 촛불문화제를 광장의 축제로 만들고 있는 시민들 ⓒ데일리 서프라이즈 
그러나, 5월 2일의 3만명이 모이기 전까지 꾸준히 임계점을 준비해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선이 끝난 이후부터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계속되면서 일인시위, 피켓팅, 소규모 집회, 온라인 홍보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들은 4월 27일 청계광장에서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위한 국민대회'를 개최하여 약 300명의 시민들과 함께 집회를 개최했다. 그날, 본보는 대한민국의 어떤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던 청계광장의 소규모 집회를 보도한 바 있다.

그로부터 1주일 후, 5월 2일 청계광장에는 3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버렸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고, 누구도 통제할 수 없었지만, 모든 시민들이 그 광장의 주인으로 나섰다. 핸드 마이크 수준에 불과한 음향장비는 무용지물이었고, 그들은 3시간이 넘도록 릴레이 구호를 외쳤다. 지금도 청계광장 동아일보 앞을 지날 때마다 울려 나오는 '동아일보 불꺼라'는 함성은 그날 집회에서 처음 나온 구호이다.

▲ 자작한 플랭카드로 의사표시를 하고 있는 시민 ⓒ데일리 서프라이즈 
이후 촛불집회는 거의 매일처럼 열렸다. 비가와도 열렸고, 그 전날 밤샘집회의 피곤이 채 씻기기도 전에 촛불집회는 열렸다. 청와대 1Km앞까지 진행하기도 했고, 수백명의 연행자가 생기기도 했다. 자진해서 닭장차에 올라타는 담대함을 보이기도 했고, 살수차와 방패의 폭력에 당하기도 했다. 한국사회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청계광장의 촛불문화제는 광화문의 거리축제로 바뀌었고, 한국사회의 구호는 '고시철회, 협상무효'에서 '이명박은 물러가라'로 변화했다. 재보선 선거는 여당의 참패로 끝이 났고, 정부는 미국에게 '자율규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보수언론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전단지에서 정부여당에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변화는 어느 순간 우리 앞에 닥쳐왔다.

한국 사회는 하나의 임계점을 넘어 버린 것이다. 어떤 변화가 더 생겨날 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사회는 촛불집회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변해 버렸다.

▲ 여성을 폭행한 전경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문구가 붙어있는 전경버스 ⓒ데일리 서프라이즈 
6월 5일이 되었다. 3일간의 연휴를 광화문에서 촛불과 함께 보내겠다는 시민들의 다짐이 수없이 모여 들었고, 시청 앞 광장은 또 다른 축제를 준비하는 기대감으로 가득찼다.

그런데 6월 5일 시청 광장에는 갑자기 각목 위에 올려세운 태극기와 위패로 가득찼다. 군복입은 수십명의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의 1박 2일 추모제가 열렸다. 이 행사는 바로 전날인 6월 4일 청와대에서 모임의 간부 15인이 대통령을 만나고 난 후 공지되었다.

시청 앞 서울광장이 군복들에 의해 점유되자, 시민들은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장소를 옮겼고, 거리를 행진했다. 첫 시작은 1만명을 조금 넘어 보일만한 숫자였지만, 행진이 끝날 무렵, 10만이 훨씬 넘는 숫자의 군중으로 변했다. 광화문 거리에서 군중의 숫자를 어림짐작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거리 곳곳의 시민들이 인도와 차도를 넘나들며 행사에 참여했다가 귀가하기도 하고, 멀리서 전철을 타고 도착하기도 한다. 이 군중들은 서울시민과 동의어이며, 대한민국 국민과도 동의어이다.

거리로 나온 10만이 전부가 아니다. 인터넷 중계를 통해 30만의 시민들이 현장을 직접 보고 있으며, 언론을 통해 수백만이 지켜보며, 수천만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촛불집회에 응원을 보낸다.

▲ 육아교사들이 교보문고 앞에서 플랭카드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 ⓒ데일리 서프라이즈 
밤 11시 현재, 시민들은 교보문고 사거리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마련한 경찰들의 바리케이트 앞에서 축제를 벌리고 있다. 시민들은 춤을 추기도 하고, 토론을 벌리기도 하고, 연설을 경청하기도 한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들부터 시작해서, 초등학생, 중고생, 대학생, 386으로 대변되는 30-40대 청년들, 나이드신 할아버지들까지 모두 함께 이 광장에서 축제를 벌인다.

시민광장이 군복에 의해 점유되었음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또 누군가를 청와대로 초청하고 또 누군가가 서울시의 어느 부분을 점유한다 하더라도 이 촛불축제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다만, 정권에 대한 비웃음은 더욱 커질 것이다.

봉천동에서 온 정준 씨는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유치해서 못봐 주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자마자 행사장소가 바뀌었고 군복입은 사람들이 갑자기 진을 치기 시작했다고요? 대통령이 그 사람들을 말렸어야지요. 아무리 관계가 없다고 강변을 해도, 얼마나 망신살이 뻗치는 일입니까? 이나라의 최고권력자라는 대통령이 하는 짓이 이렇습니다. 창피합니다."

▲ 집회 현장에 나온 토론의 성지 아고라 깃발 ⓒ데일리 서프라이즈 
시청앞 광장 대신, 이순신 장군 앞의 경찰 바리케이트 앞이 축제장소가 되어 버렸다. 아무리 성능좋은 스피커라 할지라도 광장의 시민들을 한곳에 모을만큼 크지는 못하다. 그러나 서울시내 곳곳에서 자리잡고 있는 시민들에게는 굳이 '주최측의 스피커'가 없을 지라도 시민의 축제를 만들만큼 충분히 자유롭다.

하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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