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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독도를 생각하며 대마도를 읽는다
[특별기획] 독도를 생각하며 대마도를 읽는다.15 - “대마도는 그 자신(自新)할 길을 열어 멸망의 화를 면하게 하라”
태종의 교지 中
기사입력: 2024/01/02 [15:13]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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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모근 기자

 

독도는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나라 영토이다. 일본이 억지를 부리면서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대마도정벌은 고려 및 조선 왕조에서 여말선초 시기 한반도를 침입하던 왜구의 주요 기항지 가운데 하나인 쓰시마 섬을 토벌했던 전쟁을 말한다. 

정벌은 총 3번 있었는데, 일반적으로는 조선 세종 1년(1419)에 단행된 제3차 대마도 정벌을 칭한다. 일본에서는 당시 일본 연호를 따서 오에이의 외구(応永の外寇)라고 부른다. 
울산여성신문에서는 일본의 억지주장을 일축하면서 우리 선조들의 대마도정벌을 통해 그 의미를 짚어 보고 대마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울산여성신문 문모근 기자] 이에 태종은 판서 허조에게 명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서를 대마도주에게 보내게 했다.

 

“사람이 와서 편지를 받아 보고 귀하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깨달아서, 신하가 되기를 원하는 뜻을 자세히 알았으며, 돌려보낸 인구와 바친 예물은 이미 자세히 위에 아뢰어 모두 윤허하심을 받았으니, 실로 온 섬의 복이라고 생각한다. 귀하가 요청한 바 여러 고을에 나누어 배치한 사람들에게는 이미 의복과 식량을 넉넉히 주어서, 각기 그 생업에 안심하고 종사하게 하였는데, 섬 안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니, 돌아간다면 반드시 굶주릴 것이다. 

 

또한 대마도는 경상도에 매여 있으니, 모든 보고나 또는 문의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본도의 관찰사에게 보고를 하여, 그를 통하여 보고하게 하고, 직접 본조에 올리지 말도록 할 것이요, 겸하여 청한 인장의 전자(篆字)와 하사하는 물품을 돌아가는 사절에게 부쳐 보낸다. 

 

근래에 귀하의 관할 지역에 있는 대관(代官)과 만호(萬戶)가 각기 제 마음대로 사람을 보내어 글을 바치고 성의를 표시하니, 그 정성은 비록 지극하나 체통에 어그러지는 일이니, 지금부터는 반드시 귀하가 친히 서명한 문서를 받아 가지고 와야만 비로소 예의로 접견함을 허락하겠노라.”

 

그러나 이후에도 양측의 갈등은 이어졌다. 세종 3년(1421) 4월, 소 사다모리는 부하를 보내 예조에 조선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보냈다.

 

“나의 부덕(不德)한 소치로 백성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여, 마침내 경내 백성들이 대국의 변경을 침범하였으니, 이는 대국이 용사(容赦)할 수 없는 바이라, 비록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실로 내가 원하던 바이니, 어찌 추호라도 마음에 거리끼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고을 사람으로서, 혹은 사명을 띠고, 혹은 무역을 종사한 자들로, 당시 대국 경내에 있던 자 3백 여 명이 모두 관련되어 구류당하고 있으니, 그 부모와 처자들이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하는 정을 견디지 못하여, 밤낮으로 울며 정신을 잃은 자가 10에 8, 9에 달합니다. 

 

백성 한 사람이 제대로 살지 못할지라도, 인자한 사람은 이를 걱정하는데, 하물며 3백여 명에 달하지 않습니까. 

 

대국에는 다행히 지금 위로는 훌륭한 임금이 계시고, 아래에는 어진 신하가 있사오니, 어찌 이를 위하여 측은히 여기지 않겠습니까. 

 

내가 옛 역사에서 이를 본다면, 요(堯)와 같은 어진 이가 아버지인데도 단주(丹朱) 같은 못난 이들이 있으며, 순(舜)도 큰 성인이지만 고수(瞽叟) 같은 모진 아버지와 상균(商均) 같은 어리석은 아들이 있었으니, 성품의 선악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도 서로 닮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다스리는 자는, 그 자신에만 국한하고, 그 친족에까지 연루시키지 않는 것인데, 더구나 다른 사람이야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지금 형을 받고 죽음을 당한 자들과 구류를 당한 자들은 서로 골육의 친족도 아니며, 그들이 한 짓도 서로 관련이 없어, 월(越)나라 사람이 진(秦)나라 사람의 비대하고 수척한 것을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대국에서는 옥과 돌을 구별하지 않고 곤륜산(崐崙山) 불 속에 섞어 버리며 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노여움을 옮겼으니, 어진 임금이 먼 곳의 사람을 애휼하는 도리가 과연 이러합니까. 만일 대국에서 은혜를 베풀어 일일이 옛 고장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면, 다만 내가 감사히 여길 뿐 만아니라, 죽은 아비 정무(貞茂)의 영혼도 지하에서 응당 은혜를 갚을 것입니다. 

 

또한 최공(崔公)이 금년 정월에 보낸 서계(書契)를 받자오니, ‘대마도가 경상도에 예속되었다.’ 했는데, 역사 서적을 조사하여 보고 노인들에게 물어보아도 사실 근거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대왕께서 훌륭한 덕을 닦고 두터운 은혜를 베푸신다면, 누가 감히 귀의하지 않겠습니까. 

 

옛날 주(紂)가 무도한 까닭에, 억조의 무리가 모두 창을 거꾸로 잡고 대항하였으며, 주공(周公)이 정치를 잘한 까닭에, 월상씨(越裳氏)가 아홉 번이나 통역을 거쳐서 이르렀으니, 반드시 옛날대로 〈일본 소속으로〉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덕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바라옵건대, 여러분들께서는 나의 작은 정성을 임금님께 전달하여 주옵소서. 

앞서 주신 전자(篆字)로 새긴 나의 이름을 지금 찍어서 신빙할 수 있는 표적으로 삼습니다. 현하 혹독한 추위에 모두들 나라 위하여 건강에 유의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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