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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육
출산을 기피하는 시대
출산의 행위는 인간의 최고 소중한 가치..
기사입력: 2005/05/31 [09:24]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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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창 기자


요즘 들어 출산적령기 계층 사람들의 출산 기피현상이 점점 더 심해져가고 있다 한다.
 
그런데 이를 우려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대로 가다가는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 나라의 인구수가 늘어나기는커녕 되려, 감소를 보이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정작, 그보다도 더 우려되는 상황인 것은 이 출산 기피현상에 의한 젊은 층의 감소현상과 또, 의료수준의 향상에 따른 인간수명의 연장 결과로 인해서 노인 층의 인구 증가 현상만이 자꾸 더 높아져 갈 것이라는 점이다.그렇다면 도대체, 현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이길래 출산에 있어 이토록 우려할 만한 수준에까지 이르고 만 것일까?
 
물론, 우리는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다는 자체만을 가지고 비난을 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아니, 비난을 하기보다는 되려 한없이 축복을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뜻밖의 달갑지 않은 복병(출산기피현상)을 만나 이 흥겨운 축제의 판마저 마지못해 거두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이 출산행위라고 하는 것은 결국, 다른 동물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 종을 유지존속 시켜 가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 할 수 있는 것인데, 왜 요즘 이 처럼 젊은 사람들은 그리 쉽게도 자신들의 소중한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한 출산 행위를 기피하게 된 것일까?필자는 그 근본적 원인을 인간들의 성 역할행위에 대한 전통적 뿌리깊은 오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오해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들의 최초 성 역할 행위가 시작되었던 원시시대의 삶부터 한 번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주지하다시피, 원시시대에 있어서는 인간의 남성과 여성의 전통적 성 역할이라고 하는 것이 본래부터 성차별을 조장한다 라기보다는 보다 합리적이고 능률적인 성 역할의 분담을 위한 장치로서 성립하고 또, 존재 해 온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를테면, 남성은 육체의 물리적인 힘이 여성보다 우세하니, 동굴 밖에서 주로 사냥을 담당하고, 여성은 남성들이 잡아온 들짐승들을 굴 안에서 분해하고 보관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한 사실들을 보면 알 수 있으리라.
 
또, 여성들이 육아에 더 적합하다는 이유의 경우에 있어서도, 씨를 제공한 남성보다는 직접 자신의 몸 안에서 열 달 동안 태아를 키워내서 낳기까지 하고 또, 자신의 몸에서 직접 배출되어 나오는 젖의 영양분으로 유아를 키워내니 자연, 아이에 있어서도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품이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또, 그로 인하여 강력하게 어머니의 보살핌을 요구하는 심리를 가져오게 된 측면이 크다라는 점이다.특히, 그러한 성 역할 분담행위 현상은 동물계에서도 다른 여러 포유류의 경우들에서 많이 목격하게 되는 바, 그들의 경우엔 한 술 더 떠, 사자의 경우만 놓고 보았을 때도 육아와 사냥은 주로 암컷이 담당하고 수컷은 단지, 씨를 퍼뜨리고 무리를 보호하는 역할정도에만 그치고 있는 경우를 놓고 보았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처럼, 동물의 성 역할 행위라고 하는 것은 단지, 육아나 사냥을 담당한다고 해서 더 열등한 행위인 것이 절대 아니며, 또, 사냥이나 육아를 나누어 담당한다고 해서 더 나은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은 어떠한가? 필자가 앞에서 이미 언급해 놓았던 인간들의 전통적 뿌리깊은 오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집안에서 출산과 육아를 담당한다는 행위방식 자체를 ' 남자는 우등해서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고 여자는 열등해서 집에서 애나 본다,' 는 식으로 오도해서 생각하는 그 근본적 사고방식부터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은 남자나 여자를 불문하고 ' 집에서 육아를 담당하고 살림을 하는 행위'를 그저 하찮은 역할행위로만 인식하면서, " 그저 집에서 애나 보는... " " 그저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이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끊임없이 자기 암시를 해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의 그러한 뿌리깊은 관념적 오해의 현상이 초래한 오늘날의 그릇된 제 현상들이란 것은 또,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 여성들이 집에서 육아를 담당하고 살림을 하는 행위라고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별로 중요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타파해야 한다. 여성들도 남성들처럼 무조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우러름을 받는 것만이 성차별을 해소하는 지름길이다." 라는 엉뚱하고 편협 된 오해의 생각마저 초래하게 됐다는 점이다.
 
물론, 여성도 인간인 이상, 남성 못지 않게 사회적으로 명망을 얻으며 자신의 이름을 드높여 간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결과를 성취해야 한다는 이유로 인간 종의 영속적 이어짐을 위한 가장 소중한 성 역할 행위인 출산에 이은 육아의 행위마저 그저 하찮게 보고 기피를 한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본말이 전도된 생각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중언부언 해 보자면,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가치 고양 행위-소위, 지금까지 남성들이 주로 담당해 왔던 사회적 역할행위-가 중요하다고 오해해서 그 보다 더 소중한 원초적 성 역할의 가치 행위인 '출산의 역할행위'마저 그렇게 내팽개친다고 하는 것은 정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것이다.
 
남성들의 의식 또한,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도 소중한 인간 종의 근본적 역할행위인 '육아의 역할행위'나 그 '육아의 역할행위' 를 원활하게 수행 해 나가기 위한 '살림의 역할행위' 를 늘상, 하찮게 여겨온 과거로부터의 그 나쁜 고정관념 따위를 진작에 폐기해 버리지는 않은 채, 심지어는 지금까지 여성들에게조차 그 엉뚱한 오해의 빌미를 자진해서 제공해 놓고서는 그 결과의 산물인, 오늘날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에 따른 제 성취에 대하여서 이제 와서야 슬슬 시기심을 표해 가고 있다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많은 경우에 있어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따른 제 모든 결과들이라는 것도 결국, 남성들 스스로 자초 해 놓은 측면이 많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는 그러한 현상들을 또다시, 과거로 되 돌려보려는 무모한(?) 시도까지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각설하고 물론, 출산의 기피 현상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원인들은 위에서 필자가 제기한 그런 이유 말고도 다른 여러 가지 복잡한 원인들이 얽히고 섥힌 결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가장 큰 근본적 원인은 필자가 언급한 그 원인들이 가장 깊이 그 근저에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과거로부터 뿌리깊이 인간의 의식 속에 자리해 온 '남자가 집에서 육아를 담당하고 살림이나 하는 행위는 창피한 것이다.' 라는 그 편협 된 고정관념과 ' 여자라고 해서 남자처럼 사회적 성공을 거두지 말란 법이 있는가? 나는 그래서 출산도 싫고 결혼도 귀찮다." 라는 또 다른 의미의 편협화된 고정관념들을 이제부터 다시 바로잡지 않는 한은 결코,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 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성 역할이라고 하는 것은, 그 때 그 때, 편리성에 의해서 가장 최선의 역할분담 방식을 찾아 행하고 또, 그로 인한 합리적 결과로서 보다 나은 인간 종의 삶 역사를 창조 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진 대, 이제부터는 바뀌어 가는 시대 조류에 맞추어 남편이든 아내든지 간에 가정에서의 성 역할 행위를 누가 더 잘 수행 해 나갈 것인가. 또, 가족의 안녕과 복지를 위하여 누가 더 밖에서 사회적 능력을 더 잘 발휘할 것인가를 곰곰이 잘 따져보고 각자의 역할 분담 행위를 합리적으로 바꾸어 보는 것도 마냥, 꺼려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또, 이제는 성 역할 행위의 방법에 있어서도 새 시대의 조류를 인정한다는 취지에서라면, 굳이 예전의 방식만을 끝까지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물론, 비록 부부가 최선을 다해 예전의 방식에서 탈피해 가긴 하지만, 그 인간 종 유지의 가장 소중한 가치 행위인 '육아의 역할행위' 만큼은 돌아가며 분담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을 꼭 가져야 할 것이다.
 
또, 그에 더하여 정부에서도 그 동안의 전통적인 성 역할 행위방식이 변해가고 육아의 비용마저 자꾸, 늘어가기만 하는 힘든 현실을 인정한다면, 이제는 육아의 행위를 몸소 기꺼이 담당하고 있는 그 역할행위에 대하여서도 그 노고를 인정한다는 차원에서라도 일정한 정도의 육아비용 보조 같은 것도 고려 해 봄직 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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