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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
정치프리즘-송철호국민고충처리위원장의 변신
통합민주당 바람 어떻게 일으킬지 궁금
기사입력: 2007/11/22 [09:42]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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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운 편집이사
 송철호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이 외도 1년 5개월 만에 다시 울산 정치권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난 16일 가진 기자회견에서‘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이라면서 내년 10월까지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이번 대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의 ‘울산 사령탑’을 맡기로 했다고 천명했다.

송 위원장이 고충처리위원장이 된 것은 2005년 5월이다. 2004년 총선에서 우리당 후보로 울산 중구에 출마할 예정이었으나 공천에 실패, 여의도 입성의 꿈을 접어야 했다.
 
당시 총선 분위기는 국민대다수가 한나라당 주도로 이루어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반발해 우리당 후보에게 절대로 유리했다. 따라서 그를 지지했던 인물들 중에는 그의 공천 탈락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공천 탈락에도 불구하고 울산에서 끝까지 우리당 후보 지원에 나서 울주군에서 우리당 후보인 강길부의원을 당선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선거가 끝난 후 송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여러 번 나왔다. 이런 꿈이 이루어진 것은 2005년 5월로 그 때 국민고충처리위원장직을 맡았다. 

송 위원장은 92년 총선때 처음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았다. 당시 그는 통합민주당 후보로 울산 중구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지구당을 지키면서 변호사업무를 계속했던 그는 93년 대선 때는 민주당 동부 경남선거대책위원장직을 맡아 활동했다. 

이 때 그는 당내에서 개혁을 주도했던 민주개혁정치모임의 동지들과 교류하면서 노무현대통령과 자연스럽게 정치적 인연을 맺게 되었다. 

96년 총선을 맞아 그는 다시 민주당 후보로 중구지역에서 출마했으나 2천여표 차로 김태호 후보에게 패했다.  

그는 당시 선거에서 김 후보가 막판에 몰리자 자신의 고향문제를 들고 나와 지역감정을 일으킨 것을 서운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가 지역감정에 얼마나 멍이 들었나 하는 것은 98년 울산시장 선거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당시 무소속으로 시장 출마에 나섰던 그는 여론 조사에서 상대 후보를 앞서 있었다. 그런데 이 때 그의 형 송정호씨가 김대중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그런데 이 때 형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자신의 고향을 전북 익산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러자 상대 후보가 송 위원장에게 “형이 고향을 전라도라고 밝혔는데 어떻게 송 후보 고향이 전라도가 아니냐면”서 송 후보를 몰아쳤다. 그러자 송 후보는 형에게 전화를 걸어 “형이 법무부 장관이 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왜 만주에서 태어난 형이 고향을 익산이라고 말해 나의 선거를 어렵게 하느냐”고 항의를 한 적이 있다.  

송 위원장 주위 사람들은 이 때문에 송 위원장이 정치운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송 위원장이 내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을지 모른다고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형 송정호씨가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후원회 회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형 송씨는 고려대학교 시절 이명박 후보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인연으로 내년 총선에서는 송 위원장이 울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송 위원장이 16일 기자회견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의‘울산 파수꾼’이 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에 대해 지역 정가의 표정은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적 어려움을 알면서도 노무현 사단을 위해 산화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칭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송 위원장이 너무 지역정서를 모른다는 핀잔이다. 

노무현 정권에서 울산 최대의 수혜자였던 송 위원장이 울산과는 정서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대통합민주신당의 바람을  어떻게 일으킬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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