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획/특집
기획취재
[기획] ‘울산시문화관광해설사’를 따라 탐방하는 울산의 명승, 유적지 13
천전리 암각화
기사입력: 2022/06/22 [14:18]   울산여성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UWNEWS

 

 

▲ 김미장 울산문화관광해설사     ©UWNEWS

울산은 우리나라 선사시대 최고의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국보 천전리 암각화와 대곡리암각화가 있는 곳이다. 반구대계곡의 암각화란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추진단이 구성되었다.

 

바위그림은 “바위에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한 그림”을 말한다.

 

선사인 들이 남긴 미술은 동굴에 그린 그림과 야외의 바위에 그린 그림. 지닐 예술품 등 이 있다. 야외의 바위 그림은 자연 바위에 그린 그림이 많지만 고인돌이나 입석, 제단 석에 그림이 새겨진 유적지도 있다.

 

바위 그림은 물감을 사용해 그린 암채화와, 단단한 도구로 새기는 암각화가 있다. 암채화는 구석기인들이 동굴에 사냥감들을 생생하게 표현한 동굴벽화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발견된 곳이 없고 대부분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에서 발견되었다.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돌에 인위적으로 새긴 그림이라 말할 수 있는데 제작기법은 단단한 도구를 바위표면에 충격을 가하는 쪼기와, 마찰을 이용한 긋기, 갈기, 돌려 파기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암각화는 1970년 12월 24일 동국대 불적 조사단에 의해 울주 천전리 각석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되었고, 지금까지 약 30여 곳 에 이르는 암각화 유적이 확인되었다.

 

천전리 각석의 크기는 너비 약 9.5m, 높이 약 2.7m 이다.  바위면은 역단층 운동에 의해 15도 기울어진 매끈한 단층면에 새겨져 있다. 암질은 혼펠스 화 된 자색 세일 이며 15도 정도 기울어져 있어서 산성비 등 풍화로부터 보호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유적에는 선사시대 암각화 뿐 만 아니라 신라시대 기마행렬 모습과 돛을 단 배, 말 그림과 용 그림, 새 그림 등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신라시대 진흥왕의 가족과 수행한 사람들의 관등 명과 이름, 화랑, 승려, 귀족들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선사시대 그림들 중 바위 면의 왼쪽에 쪼기 기법으로 새겨진 짝을 지은 사슴 3쌍, 몸이 기다란 동물 한 쌍, 동물 몸에 사람 얼굴을 한 그림 등 은 신석기로 올려볼 수 있다. 그리고 쪼기와 갈기를 병행한 추상적인 마름모꼴 그림, 동심원이 겹쳐진 그림, 물결무늬 등 이 확인 된다.

 

동심원, 마름모 그림들은 다른 지역의 청동기시대 암각화나 고인돌의 덮개돌, 청동거울 청동검 등 에서 확인되는 경우가 있어서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동심원, 물결무늬는 청동기시대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농경 생활에서 중요한 태양, 물을 형상화해서 바위 면에 새겨 농사의 풍요를 바라는 제사의식을 치루었던 곳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수렵, 어로, 활동보다 농경의 중요도가 더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또 여성의 상징을 새겨 다산을 바라는 제의를 지냈던 장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발견된 우리나라 선사시대 암각화 중 대부분은 청동기시대로 볼 수 있고 대부분 영남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천전리 각석에 새겨놓은 기록은 상단에는 선사시대 바위 그림인 천전리 암각화로, 하단에 새겨진 신라시대 명문인 천전리 서석으로 구분 할 수 있다.

 

하단에 새겨놓은 명문 들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책을 펼쳐놓은 것처럼 빼곡하게 한자로 새겨져 있는데 525년에 새겨진 명문과, 539년에 새겨진 명문이다.

 

525년 6월 18일 법흥왕의 동생이자 진흥왕의 아버지인 사탁부 갈문왕이, 어사 추여랑과 함께 왔고, 오래된 계곡인데 이름이 없어서 서석곡이라 이름을 지었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수행한 귀족의 관등 명 과 이름, 귀족 부인의 이름, 명문을 새긴 사람의 이름과 관등 명까지 새겨져 있다.

 

14년 후인 539년 7월 3일에 새겨진 내용은, 사부지 갈문왕의 부인인 지몰 시혜비가 사부지 갈문왕이 죽고 2년 후 남편을 사모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깊어, 친정엄마인 법흥왕의 부인 부걸지비와 사부지 왕의 아들인 심맥 부지(진흥왕)와 수행원을 거느리고 이곳을 왔다는 기록이다.

 

왕위에 오르기 1년 전인 539년, 6살인 진흥왕은 어머니, 외할머니와 함께 천전리 각석에 왔다. 이곳은 14년 전에는 진흥왕의 아버지가 왔던 곳이었다. 사부지 왕이 온 날짜는 6월 18일 진흥왕이 온 날짜는 7월 3일이었다.

 

방문기록들은 법흥 대왕이 을묘년 8월 4일 승려와 함께 온 기록, 관랑, 영랑, 선랑 등 화랑들의 기록, 귀족들의 방문기록, 6부의 기록 등 어마어마한 기록들이 곳곳에 있다.

 

그리고 바위 아래쪽에 철제도구로 새겨진 그림은 신라 시대 기마행렬 그림과 배 그림이 있다.

 

천전리 각석의 명문은 신라 시대의 정치, 사회, 외교, 복식, 6부의 명칭, 갈문왕의 칭호, 귀족들의 관등 명 등 그 당시의 중요한 기록이다.

 

바위 그림은 음각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에 햇빛이라는 자연조명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천전리 암각화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햇빛이 들어오는 오전 시간에 맞춰서 가면 된다.

 

  • 도배방지 이미지

이동
메인사진
[임영석 시인의 금주의 '詩'] 눅눅한 습성 / 최명선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인기기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