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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800km 산티아고 순례길(24)
열악한 곳에서 캐낸 보석, 별빛이 아름다운 말하린(Manjarin)
기사입력: 2022/03/11 [13:10]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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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주 객원기자    ©UWNEWS

  [울산여성신문 정은주 객원기자] 이곳 카미노에서 아침이 되면 마치 조간신문이 배달되듯 여행자들이 그날의 정보를 들려준다. 오늘은 1500m가 넘는 산을 넘게 되는데 오르막도 오르막이지만 가파른 내리막길만 7km이니 무릎이 안 좋은 사람은 버스를 이용하라고 했다.

 

   매일 약을 바르고 테이핑을 감고 진통제를 먹어가며 걷고 있는 나의 다리는 만신창이가 따로 없을 정도였기에 정보를 들은 딸이 슬며시 버스로 건너뛸 것을 권유했지만 끝까지 갈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포기할 마음이 없었기에 두 다리로 계속 걷겠다고 했다. 

 

  남이 주는 정보를 우습게 여기지도 말아야겠지만 맹신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더라' 또는 '그럴 것이다'에 집중하다 보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조차 포기하는 경우도 많으니 무지함도 문제지만 안다고 여겨진 것이 오히려 진실을 가릴 수도 있으니까.

 

 

 

  오르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두 마을을 지나 산꼭대기에서 ‘철의 십자가'를 만났다. 과거 이 지역은 켈트족이 살았는데 이들은 산을 넘을 때마다 돌을 놔두며 산신에게 감사하고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빌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자신의 짐과 죄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믿고 자신이 살던 곳에서 돌을 가져와 철의 십자가 아래에 놓는다고 했다. 

 

  돌무더기 위에 긴 십자가가 우뚝 세워져 있기에 ‘신의 뜻은 저토록 높이 세워져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표정이 다들 진지해서 ‘믿음이란 작은 것 하나에도 힘을 발휘하는구나’ 싶었다. 

 

 

 

  정상에서 내려가다 보니 도로 옆에 만하린(Manjarin) 알베르게가 보였다. 만국기가 펄럭이고 있었고 태극기와 '평화통일' 깃발도 있었다. 이때까지도 우리는 드디어 쉴 수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는 기쁨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전기와 수도 시설이 없어서 물탱크에 받아둔 아주 차가운 물에 세숫대야 하나 정도로 샤워를 끝내야 하는 마술적인 상황을 맞았다.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은 게 전부였다. 화장실은 도로 건너편에 있는데 폭격이라도 맞아 허물어진 듯했고, 구덩이 위에 판자로 얼기설기 얹어 둔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우리가 잘 곳을 보니 오래된 창고 같은 곳이었는데 마구간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침대라고는 나무판자 위에 먼지와 때에 찌든 매트리스가 얹혀 있었다. 생쥐나 살까 도저히 사람이 잘 수 있는 환경이라 믿기 힘들었다. 오죽하면 바깥에 있는 개집이 더 말끔해 보여서 "멍멍아, 우리랑 방 바꿀래?"라고 물어봤을까만 멍멍이는 양보할 마음이 없는 듯했다.

 

  딸은 지금이라도 7km 더 걸어서 산을 내려가자고 했지만 나는 더 걷기는 힘드니 하룻밤 불편한 게 몸을 상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생각 끝에 딸의 침대 위에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비닐 은박지를 깔아주고는 "공주님, 은침대를 마련했사옵니다."라고 꼬셔봤지만 원망 가득한 눈빛만 되돌아왔다.

 

  이곳 시설이 매우 열악하다고 알려진 숙소인 줄 모르고 온 이들이 또 있는지 우리 뒤에 남녀 한 쌍이 도착했다. 다니엘이라는 스페인 청년은 80여 개 나라를 여행했다는데 서울, 양양, 속초, 부산을 들렀다면서 김밥도 먹어봤다고 했다. 같이 온 여자는 프랑스어만 할 줄 알아서 대화는 어려웠다. 

 

  우리는 그들의 표정이 기대되어 의미심장한 웃음을 나눴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들도 아주 난감한 표정이었다. 몇 차례에 걸쳐 한참 상의를 하더니 결국 이곳에서 자기로 했단다. 우리는 '배드 버그 친구'가 됐다며 아주 환영한다고 했더니 소리 내어 웃었다. 역시 동병상련의 동지애는 결속력이 대단해서 저녁 식사 때에는 가족이 되어 있었다. 

 

  산중에 어둠이 깔리니 아까 인사를 나눴던 과묵한 큰 개들이 하늘을 보며 늑대 소리로 울부짖어서 오싹했다. 나는 애써 "설마 여기가 귀곡산장은 아니겠죠?, 설마 핼러윈 데이를 하루 당겨서 경험하는 건 아니겠죠?"라며 한과 농담을 해봤지만 분위기는 호러(horror) 수준이었다. 

 

  열악함 뒤에는 선물 같은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를 운영한 지 21년이 되었다는 토마스라는 분은 템플 기사단 출신으로 자부심이 대단했다. 중세 때 템플기사단의 얘기를 내가 어찌 듣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식당 겸 침실에 붙은 오래된 사진과 벽에 걸린 그림과 그 정신을 이어온 사람들을 눈앞에서 보니 신기했다. 

 

  고령임에도 눈빛에서 여전히 강인함이 느껴졌다. 스페인 사람인 다니엘과는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우리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 너무 아쉬웠다. 또 아주 상냥한 호세라는 분은 토마토 샐러드와 함께 돼지고기 감자 콩 당근 등을 넣고 스튜를 만들어 주었는데 지금껏 먹은 스튜 중 가장 맛있었다. 

 

  촛불 아래 아주 아늑한 곳에서 너무나 맛있는 저녁을 먹은 후 우리는 숙소로 가려고 밖으로 나왔다. 발밑이 더듬을 정도로 칠흑같이 깜깜해서 호세가 손전등을 밝혀주었다. 

 

 

  땅의 어둠이 짙은 만큼 대비되어 하늘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맑은 수많은 별이 쏟아질 듯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온 세상이 잠잠히 하늘만 우러러봐도 좋을 듯했다. 왜 여기를 '콤포스텔라'(별들의 들판)라고 하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천장에서는 먼지 덩어리와 벌레가 떨어지고 있어서 자칫하다가 자는 동안 나도 모르게 벌레를 먼지에 비벼서 과식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우리 모두는 침낭의 지퍼를 머리끝까지 올려서 자야 했다. 하지만 열악한 곳에서 보석을 캐는 것처럼 처음에는 낯설어서 오싹했는데 겪고 보니 이곳 만하린은 날것처럼 생생하며 별빛 가득한 아름다운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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