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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800km 산티아고 순례길(4)
“바람의 날” “한국집시라는 별명이 생겼지만, 뭐 어쩌랴”
기사입력: 2021/01/19 [15:55]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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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여성신문 정은주 객원기자]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 여행 5일째, 이제 도시 팜플로나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 넘게 될 산이 가파른 오르막이고 내려가는 길도 자갈길이라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여행자들은 다른 날보다 적게 걸을 거라고 했다. 

 

다들 어찌 그리 미리 꼼꼼하게 알고 왔는지 다양한 정보를 우리에게 공유해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싼값으로 하루를 묵을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가까운 곳에는 공립 알베르게가 없어서 힘들더라도 조금 더 걷기로 했다. 25km 넘게 걸어서 1인당 5유로밖에 안 되는 곳에 묵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둘 다 컨디션이 괜찮아서 용기를 낸 것이었다. 물론 온몸의 근육통은 여전했기에 새벽부터 파스를 붙이고 테이핑을 하고 무릎보호대와 발목보호대까지,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섰다. 그래서인지 어제보다 훨씬 가뿐하게 출발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풍경은 걷기에 너무 좋았다. 도시를 지나 한적한 시골길에 들어서니 평탄한 황톳길이 이어졌다. 가을 밀 수확이 끝나고 말끔하게 정리된 밭에는 풀 한 포기 없이 맑은 얼굴로 맞이하는 듯했다. 멀리 보이는 산을 바라보며 걸을 때마다 그 산을 향해 조금씩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며칠 걷다 보니 얻은 것이 있다. 눈에 보기에 너무 까마득히 멀어 보이고 속절없이 높아 보이는 곳이라도 포기하지 않으니 어느새 다다르게 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도저히 해내지 못할 것 같은 목표에 기가 죽거나 겁먹기보다는 우선 내 앞의 한 걸음을 소중히 여기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들과 “부엔 카미노”라며 주고받는 인사가 일상이 되었고, 일어나면 걷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불과 며칠 만에 도보 순례길의 생활이 당연시 여겨졌다. 오히려 한국에서의 일상이 아주 까마득히 멀어진 듯했다. 

 

적응이 잘 된 것인지, 기억력이 허술한 것인지 모르겠다. 습관도 강력한 자발성을 이기지는 못하나보다. 어쨌든 여행은 과거 습관들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나아가 다양한 변화를 너그럽게 받아주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산이 가까워 올수록 산 너머 정경에 대한 설렘보다는 내 두 다리로 저기를 넘어가야 하는구나 싶어 슬금슬금 자신이 없어지는 듯했다. 산에는 어깨를 맞댄 듯 거대한 풍력기가 능선을 따라 멋지게 돌아가고 있었다. 

 

 

멀리서는 그저 예쁜 바람개비를 감상하는 정도로 보았는데 가까이 지나가면서 올려다보니 크기가 엄청나게 컸다. 윙윙하고 바람을 일으키는 소리를 들으니 날개 하나가 돌 때마다 저렇게 하니 에너지가 만들어지는구나 싶었다.

 

오르막은 급할 것 없이 에둘러가도록 이어졌다. 조금 가파른가 싶은 즈음에 페르돈 고개 꼭대기에 올라섰다. ‘페르돈’이 용서라는 뜻이라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용서의 언덕'이라고 불렀다. 누군가는 죄를 지었고 또 누군가는 용서한다는 것인데 신이 아니고서야 인간이 그런 자격이 있는지 불쑥 궁금했다. 

 

언덕 끝에는 철제로 된 순례자들 모습의 작품이 세워져 있었다. 멀리까지 펼쳐지는 탁 트인 풍경이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던지 사진을 찍을 때 몸을 가누고 서있기가 힘들 정도여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자갈이 많은 길이라 스틱에 의지해서 조심조심 산을 내려갔다. 도중에 이탈리아에서 오셨다는 주세페라는 할아버지를 만나서 한참을 동행하였다. 손수 만든 것이라며 작은 수레를 몰고 다니셨다. 수레에는 이탈리아 국기도 걸려있었다. 72세라고 하셨는데 그간 몇 번 인사를 나눴던 터라 다시 만나니 더 반가웠다. 

 

풍경을 사진에 담기도 하며 아주 천천히 걷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어느새 우리보다 앞서 가셨다. 잠시 쉬면서 기념사진도 찍으며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다시 헤어질 때는 수첩을 꺼내더니 우리 이름을 일일이 써 달라고도 하셨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인생과 여행에 대한 내공이 상당한 분인 듯했다. 우리는 다음 마을까지 간다고 하니 “천천히, 천천히”라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고는 다시 헤어졌다.

 

한동안 동행하던 한국인 두 분과도 마을 입구에서 헤어졌다. 어제까지 수없이 만나던 여행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거기서부터는 앞뒤를 둘러봐도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 시간 카미노에는 딸과 나 둘만 걷고 있었다.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도 다들 이전 마을에서 묵기로 했나보다. 갑자기 하루의 피로가 몰려오는 듯했고, 우리도 이쯤에서 끝내고 쉬고 싶었다. 아직 6km 정도 더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아침에 했던 결정이 잠시 후회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뒤만 보며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계속 가야하니까. 눈앞에는 가을 수확을 끝내고 깨끗하게 정리된 넓은 벌판이 펼쳐져있었다. 마치 빗질한 황토색의 긴 머릿결 같았다. 

 

초여름이면 부드러운 바람에 푸르게 넘실대는 모습일 것이고, 수확하기 전에는 황금물결 같은 밀밭이 펼쳐졌을 것이다. 사계절의 정경은 어떨지 다른 계절에 또 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 위에서 내 안의 감정도 출렁임과 고요함이 밀물과 썰물처럼 교차했다. 

 

 

25킬로 조금 넘게 걸어서 푸엔테라 레이나에 도착했다. 우리가 묵을 알베르게를 찾아 순례자 여권에 또 하나의 도장을 받았다. 방에 들어오자 우린 "오늘도 해냈다"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또 해냈다는 사실에 오늘을 서로 축하했다. 도착하기 5분 전까지만 해도 제자리에 주저앉을 듯하였는데 기뻐할 힘 정도의 여유분은 있었나보다.

 

하루를 돌아보니 오늘은 바람의 날이었다. 종일 세찬 바람과 함께 걸었다. 평소에 바람을 좋아하는 기질인데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를 내내 느끼며 걸었던 하루였다. 내 안의 바람은 언제 일어나며 어디로 가는 걸까?

걸을 때는 몰랐는데 숙소에 와서 보니 하루 만에 둘 다 얼굴이 까맣게 타버렸다. 그걸 알고 서로 놀랐다. 딸은 타도 너무 타버렸다며 언제 챙겨왔는지 가방에서 마스크팩을 꺼내더니 나에게도 건넸다. 둘 다 얼굴에 팩을 한 채 침대에서 누웠다. 

 

그러자 옆 침대에 있던 스페인 부부가 너무 재미있다며 웃더니 사진 좀 찍어도 되겠냐고 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마스크 팩도 안 하나보다며 같이 웃었다. 이러다 페이스북에라도 올리면 졸지에 '국제바보'가 되는 거라며 다시 웃었다. 

 

하기야 나는 이미 여기서 '한국 집시'라는 별명이 생겼다. 몰골이 후줄근하다는 뜻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모양새까지 예쁘게 갖출 여력이 없는 것을. 무사히 도착한 오늘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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