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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울산박물관, 울산근현대사 마을기행
남창 3.1의거장터~반공연맹원 학살장소 반정고개
기사입력: 2019/07/04 [18:32]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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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덕순 편집국장

[울산여성신문 원덕순 편집국장] 2019 울산박물관 답사프로그램이 지난 3월부터 시작돼 제4차 기행이 22일 실시됐다. 30여명의 회원들과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9시 박물관 주차장에서 버스로 이동해 남창시장에 도착해 마을기행이 시작됐다. 

 

울산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남창과 웅촌 일대의 역사를 탐방하는 시간이었다. 남창 3.1운동의 시발지였던 남창시장과 의거기념비, 울산의 곡창집결지였던 남창역사를 둘러보고 남창이 울산에서 가졌던 역사적 무게를 가늠하게 했다. 

 

이어 학성 이씨 근제공 고택과 울산이 낳은 외교관 조선통신사 이예 선생을 배향하는 석계서원을 탐방하고 반정고개를 답사하는 것으로 기행은 마무리되었다. 울산노동역사관 배문석 선생이 안내와 함께 역사해설을 맡아 참여시민들에게 울산사랑의식을 심어주었다. 

 

울주군에서 참석한 임현주(71세)씨는 “울산역사의 일부분이나마 알게되어 감명깊었다. 이런 프로그램이 더 많이 진행돼 울산시민들의 애향심과 정주의식을 심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1.남창삼일의거 기념비(1994년 3월1일 건립)

 

 


2.남창옹기종기시장(남창장터)

 


남창3.1운동은 4월8,13일 장날을 기해 남창장터에서 시작되었다. 현재는 ‘남창옹기종기시장’으로 단장을 했지만 장터 어디에도 ‘3.1운동 시발지점’이라는 안내판이나 푯말이 없었다. 울산시와 울주군의 관심이 필요한 곳!!

 

3. 남창역사

 

 

1935년 10월에 동해남부선이 개통되면서 남창역도 개통되었다. 이후 남창역이 개통됨에 따라 조선시대 울산부 남쪽에 설치된 곡물창고인 공수공창이며 서쪽 창고는 ‘서창’이다. 동해안 바닷가와 울산 안쪽 땅이 남창으로 연결되며 다양한 물자들이 남창역을 통해 들어왔고 울산쌀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양도 함께 늘었다. 

 

4.석계서원 

 


웅촌면 대북동천로 160-1고려말에서 조선초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외교가 충숙공 이예를 배향하는 서원. 회야강이 옆으로 흘러 경관이 빼어난 곳에 위치하며 1년에 4차례 제를 올린다. 

 

5.학성 이씨 근제공 고택

 

 

울산학성이씨 근제공 고택은 임란공신 이겸익의 후손인 근제공 이의창이 1765년 영조41년에 웅촌면에서 현 위치로 옮겨온 양반가의 고택이다. 마을기행 탐방단이 처마에 앉아 배문석 선생의 해설을 듣고 있다.

 

6.해방후 울산의 보도연맹 학살사건

 

 

민간인 학살의 아픈 역사인 보도연맹은 국민보호선도연맹이 정식명칭이다. 1949년 사회주의 계열을

반공이란 국가이념에 맞게 선도한다는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보도연맹을 만든 목적은 늘어나는 사회주의 세력을 국가보안법 처벌로만 불가능했으므로 가입대상이 무분별하게 적용되었으며 보도연맹과 무관한 민간인들까지 적용됐다는 점이 현재까지 아픈 역사로 남아있다. 

 

7. 울산보도연맹원학살장소…반정고개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이승만대통령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하며 보도연맹원에 대한 학살명령이 떨어진다. 

 

전쟁발발 불가피한 조치였으나 사상과는 무관한 민간인들에 대한 학살은 우리 민족사중 가장 큰 아픔으로 남아있다. 

 

울산지역에도 7백여명의 보도연맹원이 기록되어있고 당시 울산읍 처형자 명부는 677명이었으나 1960년 부산지검 수사자료에 의하면 87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처형자들을 학살하고 매몰했던 반정고개 산 속 학살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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