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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영의 ‘클래식 음악’ 산책
밥 먹여주지 않는 예술, 가난한 음악가들
기사입력: 2019/04/01 [13:01]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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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영/음악칼럼니스트     ©UWNEWS

 예술가들이 가난하게 살았다는 스토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많이들 들어 봤을 것이다. 클래식이 탄생하였던 유럽 국가에서도 초기 음악가들의 생활은 하인과 다르지 않았다. 귀족에 고용되어 하인과 같은 복장을 하고 밥도 하인들과 먹으며 궁핍한 생활을 하였던 이야기는 하이든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이다.  

 

궁정 음악가들이 전속 음악가로 고용이 되면서 생활이 조금 나아졌고, 시민계급이 점차 성장하면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음악가들도 생겨났다. 궁정 음악가에서 프리랜서로 전향하였던 모차르트는 그 과도기에 서 있었던 인물이며, 음악가로 큰 명성을 얻은 덕분에 큰돈을 벌기도 하였으나, 말년엔 돈이 없어 허덕이는 삶을 살았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썼던 최초의 인물이 바로 베토벤이었다. 그러나 그의 뒤에도 그의 음악을 후원해 주는 부유한 귀족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얘기였다. 그의 음악이 후원 받기는 하였으나, 이것 또한 누군가의 후원에 기대어야 했으니 마음이 편했을 리 없다.  

 

 

이렇게 가난을 각오하고 시작해야 하는 음악가의 길을 찬성하였던 부모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베를리오즈의 부모님은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지만, 그는 의대를 1년만 다니다 음악가의 길로 뛰어들었다. 의사를 하라고 파리로 유학을 보냈으나 오히려 파리에서 훌륭한 공연을 보고 음악에 더욱 매료되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도 작곡을 하였던 그는 돈을 벌지 못해 궁핍하게 생활하였고, 대중의 관심을 받기위해 일부러 행했던 기이한 행동들은, 세월이 흘러도 편견 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게 하였다.  

 

아름다운 선율이 많은 곡들로 유명한 슈베르트도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작곡가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교사가 되기를 바랐으나 그는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의 삶은 너무나 가난하여 음식을 살 돈조차 없었다고 한다. 수많은 명곡을 쏟아내었으나 불운하게도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오늘날에는 거의 신격화 되는 바그너도 가난과 빚에 허덕이며 도피하는 삶을 살다 말년에 운이 좋게 왕의 후원으로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아 살아 있을 때 많은 부를 거머쥐었던 작곡가들도 생겨났지만, 그건 아주 소수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 음악가의 이야기가 과거의 이야기이면 좋겠으나, 현실은 오늘날까지 그 고난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다.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불안정한 생활을 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수 없는 상황은 불안함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세기를 거슬러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음악에 몸을 던졌던 이유는 그만큼 음악이 갖는 강렬한 힘 때문 인 것 같다. 몸속에 음악적 재능이 넘쳐흘러 음악을 해야만 했을 수도 있고, 하면 할수록 매료되어 헤어 나오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가난하게 살게 하지만, 음악을 계속 하게 하는 힘은 재미가 아닐까 한다. 운명처럼 음악을 만났고 어떤 이끌림으로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된 사람들의 삶은 순탄치 않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음악가라는 정체성은 강렬해서 평생을 음악가로 살게 한다. 어느 순간 음악이 나이고 내가 음악이 되는, 남으로 분리될 수 없는 나의 강력한 아이덴티티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다시 음악을 하겠냐고 묻는다면, 다음 생은 다른 걸 하고 싶다고 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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