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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영의 ‘클래식 음악’ 산책
“역경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숭고한 정신의 승리”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Beethoven, Symphony no. 3, in Eb Major, Op. 55, ‘Eroica’) 』
기사입력: 2019/01/30 [17:25]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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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영/음악칼럼니스트     ©UWNEWS

 베토벤이 귀가 멀었음에도 역경을 딛고 역사에 길이 남을 대곡을 작곡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 것이다.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이 귀가 멀어도 큰 시련인데, 귀가 생명인 음악가에게 이런 시련이 왔으니 베토벤 자신의 상심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귓병이 생긴 이후에도 계속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귀가 멀기 시작하였던 시기는 한창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1인자로 인정받던 시기였다. 그런 그의 귓병이 세간에 소문나기라도 하면 음악가로서의 그의 미래는 위협받을 것이 뻔했다. 그것을 두려워하였던 베토벤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멀리하기 시작하였는데, 사람들은 그의 진짜 속내도 모르고 그가 비사교적이며 괴팍하고 은둔하는 사람이라고 나쁜 평가를 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귓병을 앓으면 귓속에서 이상한 소음이 들리고 두통이 수반되는 등 말하지 못할 고통이 온다고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음악 활동을 계속 하였던 그는 두통과 귓속 소음 탓에 작업에 몰두하기가 상당히 힘겨웠을 것이다. 의사들을 만나고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시도해 보았으나 해가 갈수록 증상이 나빠지자 자신의 병은 치료할 수 없는 난치병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귀가 앞으로 들리지 않을 것이며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의사의 권유로 하일리겐슈타트 라는 시골로 내려가 자연 속에서 조용히 작업에만 몰두하며 은둔 생활을 하였던 그는, 1802년 죽음에의 공포를 느끼며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작성하게 된다. 

 

 

 사람들이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오해하지만, 자신이 죽고 나면 모든 오해가 풀릴 것이라는 글로 시작하는 이 편지는, 앞으로 귀가 완전히 멀어버릴 것이고 죽을  수도 있지만, 죽음에 굴복하기는커녕 역경과 죽음 앞에서도 절대지지 않겠다는 베토벤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한 인간이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생이 다 하는 날까지 역경을 헤쳐 나가겠다고 다짐하는 이 글을 읽노라면 인간 베토벤과 작곡가 베토벤 두 가지 측면으로 절로 경외심이 생기게 된다. 자신에게는 아직 (음악적으로) 할 말이 많이 남아있노라고 절절히 절규하는 그는 진정한 천재 작곡가 였던 것이다. 

 

 이 유서를 쓴 이후로 그의 작품세계는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다. 이전에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처럼 고전적 성격을 띠었다면, 서서히 그 틀을 벗어나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게 된 것이다. 그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시기이자 그가 유서에서 내비쳤던 인간 승리의 의지가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나오게 된다. 1804년 세상에 발표된 교향곡 3번 “영웅” 교향곡은 마지막 악장에서 운명에 맞서 승리하는 주제를 보여주는데 이후에 나오는 교향곡에서도 역경을 헤치고 승리한다는 주제를 잃지 않고 표현하였다. “영웅” 교향곡은 처음에는 나폴레옹에게 바치려고 작곡되었으나, 전쟁 승리 후 스스로 황제로 칭한 그에게 실망하였던 베토벤은 그의 이름을 악보에서 지워버린다. 자신이 바라던 영웅 상, 시민을 위한 영웅인줄 알았으나 독재자였던 것이다.

 

 이 곡은 베토벤이 원래 이상적인 영웅으로 생각하였던,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형벌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를 모티브로 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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