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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옹기, 비싼 만큼 ‘최상급
70~80년대 옹기 판매동향 및 거래처 등 담긴 거래장부 발견
 
김건우기자 기사입력  2008/12/11 [14:24]
    
1970~80년대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옹기거래처의 변화와 거래량, 가격 등이 고스란히 적힌 옹기 거래장부가 소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이 자료를 통해 1977년 옹기 수요가 정점에 이르렀고 울산지역 옹기는 가격이 비싼 만큼 제품 질이 최상(??이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조직위(위원장 박맹우 울산시장)에 따르면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김재호 교수는 올해 초 경북 영주에서 50년간 옹기를 판매한 옹기상인의 거래장부를 확보했으며, 이를 토대로 ‘1970~80년대 옹기상인의 거래 장부 분석을 통한 옹기문화지도’라는 학술연구자료를 최근 발표했다고 밝혔다.
거래장부는 옹기상인 김재순(오성토기 대표)씨가 1970~1990년 경북 북부지역을 비롯해 울산, 경남, 충북 청원, 충남 연기군 등지 40여 곳의 옹기점과 거래한 내역이 담겨있다.
장부에 따르면 시기별 옹기거래처는 1970년대 중반 경북 청송이 중심을 이루다가 이후 울산과 영덕으로 바뀌었고 1980년 이후에는 유통범위가 전국단위로 넓어졌다.
특히 1975년 즈음 옹기가격은 1자리*값이 울산 870원, 영덕 750원, 청송 500원, 영주 300원으로 울산옹기가 가장 비쌌던 것으로 집계됐다.
김 교수는 “옹기가격이 옹기 질과 비례한다고 볼 때 울산 옹기는 최상급에 속했다.”며 “지역별로 옹기제품의 질과 교통, 운송수단 등에 따라 가격 편차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간 옹기구매량이 가장 많았던 때는 1974년으로 총 5,822자리였고 그 다음 1977년 5,819자리로 이즈음 옹기구매가 가장 활발했던 것으로 추측됐다.
이와 함께 타 지역에 없는 ‘대(?자리’를 울산에서만 생산하는 등 울산 옹기점은 대규모, 대량생산의 형태를 띠며 다양한 종류의 옹기를 생산했다.
옹기 거래시 대금지불방법은 직불·후불·선불·정산 등 다양했으며 울산과 영덕의 경우 옹기의 질이 좋아 선금을 주고 물건을 미리 예약하거나 현지에서 대금을 곧바로 지불하는 방법이 많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거래장부에 나타난 옹기 거래처와 구매단위의 지역적 차이 등은 옹기문화를 이해하고 향후 생산자 중심의 옹기분류체계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옹기의 새로운 미래가치 창출을 목표로 2009년 10월 9일~11월 8일까지 울산대공원·외고산 옹기마을 등에서 개최되는 ‘2009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 는 옹기에 대한 새로운 학술적 접근을 위해 국제 학술행사를 계획 중이며 현재 각지의 옹기·도예학자들과 접촉하여 자료 수집 등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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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2/11 [14:24]  최종편집: ⓒ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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