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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여행기)
살아 있는 듯한 미라 모습 볼 수 있어
서역의 자랑 명마 천리마도 눈길 끌어
기사입력: 2008/11/26 [23:39]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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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여성신문
    
우루무치에서는 위구르족을 많이 볼 수 있다. 위구르족은 외형적으로 한족과 차이가 많다. 남자들은 모자를 쓰고 여자들은 요란한 스카프를 하고 다닌다.  눈은 파랗고 몸은 날렵해 여성들의 경우 인물이 예쁘다. 외형적으로 보면 아랍인들을 닮아 이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 가면 혹 이곳이 아랍 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남자들은 여럿이 함께 모여 우리나라 경운기 같은 것을 타고 다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들은 주로 바자르에서 장사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상술이 하도 끈질겨 외지인들이 물건 값을 물은 후에 물건을 사지 않고 돌아서면 때때로 이들로부터 욕을 듣기도 한다.
중국은 사람이 죽은 후 화장을 원칙으로 한다. 이 때문에 주은래 등소평등 중국 지도자들도 죽은 후 모두 화장을 했다. 따라서 북경 인근에서는 무덤을 보기가 힘들다. 우루무치는 다르다. 이곳은 자치구로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슬람 인이다 보니 죽은 후 화장을 하지 않고 주로 토장을 한다.
신장 위구르족 자치구 박물관으로 가 본다. 우루무치는 사막지대이다 보니 특별히 볼 것이 없다. 그런데 건축물은 북경을 닮아 규모가 크다. 중국을 여행 해 보면 이들이 얼마나 손이 큰지를 알 수 있다. 특히 공공건축물을 보면 우선 규모에서 반도에 사는 우리들을 놀라게 한다. 북경 자금성의 경우 방의 숫자가 9백99개가 되어 우리나라 궁궐의 100여배가 되는데 이런 현상은 모든 건물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신장 박물관 역시 규모가 크다. 면적은 7,800㎡로 소장품만 해도 5만점이 넘는다. 건축물은 전형적인 이슬람 건축 양식으로 정면에는 18m 높이의 녹색 첨탑이 있다.
관내에는 신장 지역에서 발굴된 역사적 문물을 전시하고 있는 역사문물관실이 있고 1층에는 신장 지역에 사는 각 민족의 의상과 주거를 보여주는 민속실도 있다.
민속실에는 각 민족이 사용했던 생활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어 그들의 생활을 엿 볼 수 있다. 이곳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파오와 의상이다. 실물 크기의 파오는 내부까지 보여주고 있다.
파오의 경우 규모가 작아 외부에서 보면 답답할 것처럼 생각되었는데 아름다운 카펫이 깔려 있는 실물을 들여다보니 예상외로 공간이 넓고 분위기도 안온해 삶의 공간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의상 역시 아름답다. 의상을 보면 이들이 원색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자 역시 종류가 많은데 이것은 모자를 쓰는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의 모자를 쓰기 때문이다.
악기는 대부분 몽고족들이 사용하는 악기를 닮았다. 그런데 악기만 해도 종류가 상당히 많아 이들의 낙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천리마의 모습 역시 눈길을 끈다. 우리들이 흔히 명마라고 부르는 천리마는 옛부터 말을 많이 키웠던 이곳 서역에서 나온 이름이다. 명마는 천리를 한 걸음에 달리는데 천리를 달리고 난 후에는 피땀을 흘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나라 때 까지만 해도 서역의 천리마는 중앙에 많이 공납되었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미라다. 3천여 년 전에 만들어진 미라가 흡사 실물처럼 누워 있다. 이중에는 당시 손에 발랐던 메니큐어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잠자는 미녀도 있는데 이 미라는 살아 있을 때의 인물을 미라 가까이 재연 시켜 놓아 인생의 무상함을 말해 준다.
신장에서 발견되는 미라의 특징은 자연 건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이라 하면 이집트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집트는 사람이 죽은 후 일부러 미라로 만들기 위해 약물 처리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신장 미라는 약물 처리를 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건조된 것이다. 이 때문인지 미라의 모습도 이집트에 비해 자연스럽다. 이곳에 미라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은 습기가 적기 때문이다. 일년 내내 16m 정도의 비 밖에 내리지 않는데 비해 습기 증발은 강우량 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땅속에 묻힌 시체가 자연스럽게 미라가 된다.
미라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투르판 아스티나 고묘군에서 발견된 것이다. 1천200여년전 이곳에서 근무했던 당나라 장군 장웅이 자신이 죽은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무덤에 벽화까지 남겼다.
박물관에는 무덤에 있는 벽화를 복원해  놓았는데 벽화를 보면 고향을 그리면서 애타게 이역 땅에서 죽어갔던 장웅의 슬픈 한탄이 들리는 것 같다.
이외에도 박물관에는 하미에서 출토된 귀가 두 개나 달린 채도 항아리가 있나 하면 페르시아 유리그릇, 알타이계 구리솥, 시베리아 계통의 토기, 북방계의 석관묘 등이 있어 이 지역 인근의 생활 모습까지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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