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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육
볼거리 있는 기념관 돼야
기사입력: 2008/10/31 [08:52]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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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여성신문
충렬공 박제상 기념관이 개관 석 달 만에 7천500여명의 관광객이 찾는 등 역사문화 관광 시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숫적으로 보면 매달 2천5백여명, 하루에 70~80여명이 찾은 셈이 된다.  
  치산서원이 오래전에 건립되었지만 특별히 관광객을 끌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울산시는 최근 들어 이처럼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에 대해 만족해서는 안 된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어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박제상 기념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가을이라는 계절적인 요인과 또 기념관이 문을 연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들이 거는 기대 심리가 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박제상은 고구려와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인질로 잡혀 가 있던 왕제를 돌려보낸 후 자신은  일본에서 순국했다.
  그의 가족 역시 정과 효를 지켰다. 부인 김씨는 치술령에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고 딸들 역시 어머니가 돌아가자 혼이 새가 되어 은월암으로 들어갔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행적이 이처럼 빛나지만 정작 이들의 행적을 보여줄 유물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치술령에는 망부석과 신모사터 등이 발견되어 이들의 정신을 전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전설에 근거를 둔 것이어서 쉽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물론 기념관에는 각종 영상물이 공연되고 있다.  최근에는 울주문화원에서 오폐라  망부석'을 제작해 이를 매년 공연함으로써  많은 관중들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에 못잖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행적을 보여 줄 수 있는 유물을 찾아내어 이를 전시하는 것이다.
   80년대 후반 황수영정영호  박사 등이  치산서원 발굴단'을 만들어 치산서원 터와 신모사터를 발굴할 때  토기와 와기, 동전 등 각종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또 박제상 후손들이 박제상 관련 문집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유물들의 행방을 알 수 없고 이 때문에 기념관 전시실은 아직 비어 있는 상태다.  따라서 울산시가 이들을 찾아내어 전시를 할 때 박제상 기념관이 볼거리가 많아지고 이에 따라 기념관을 찾는 숫자도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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