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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
병영성 복원 계기 돼야
기사입력: 2008/09/12 [09:40]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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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여성신문
 
‘시민과 함께 하는 풀뿌리 의정포럼’이 9일 ‘병영성의 역사적 의미와 발전 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가졌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제시되었지만 한삼건 교수가 발표한 ‘병영성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가 눈길을 끈다.

한 교수는 발표문을 통해 병영성이 관광지로 조성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했다.

병영성은 성 자체로 큰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조선시대 이 나라 국방의 최첨단 기지였고 임진왜란 때는 허무하게 무너졌지만 무룡산에서 봉기한 울산 의병들이 처음으로 왜병을 상대로 결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역사적 의미가 큰 병영성이 옛 흔적을 잃게 된 것은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울산왜성을 쌓으면서 이곳의 성 돌을 가져다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영성은 임진왜란 이후에도 조선조 말 우리 군이 해체될 때 까지 군사기지로 이용되었다.

해방 후 이곳이 황폐하게 된 것은 시의 건축 정책 부재를 틈타 불법 건축물이 많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요즘 성내를 돌아보면 도시계획과는 무관하게 지어진 불법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이 성안에는 울산을 빛낸 인물들의 생가가 있나 하면 역사적 건축물도 많다. 성 중앙에 있는 병영초등학교는 병영 3. 1운동의 진원지였고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병영교회는 역사가 1백년이 넘는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기도 하다.

지금은 성 밖에 있지만 동편에 있는 산전 샘은 울산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샘으로 70년대까지만 해도 울산에 주둔했던 미군들이 이 샘의 물을 마셨고 일부는 일본에 있는 미군들에게 공수가 되기도 했다.

또 울산을 빛낸 인물인 최현배선생과 가수 고복수 생가도 이 성안에 있다.

그런데도 이 성이 지금까지 버려지다 시피 된 것은 시의 정책 부재 때문이다.

병영성은 군사기지의 역할도 했지만 자연풍광도 아름다웠다. 옛 기록을 보면 조선조 때 울산 팔경에는 병영 성문이 반드시 들어갔다. 불이 켜져 있는 성문을 멀리서 보는 모습이 대단히 아름다웠다고 한다.

병영성 복원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이번 학술대회가 어떻게 민노당 시의원들에 의해 주도가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병영성 복원은 여야가 다를 수 없다. 따라서 이번 대회를 계기로 병영성이 복원되어 울산의 또 다른 관광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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