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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댁의 레시피 '헛젯밥'(2)
 
UWNEWS 기사입력  2022/02/24 [15:48]

 

김준호는 18세에 춘당 김수악 명인을 은사로 소리와 악을 배웠으며, 상징민속학을 전공했다. 해병대 484기이며, 2014년 1월 1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4호 국내 지신밟기 예능 보유자로 선정되어 인간문화재가 됐다. 

손심심은 17세에 문장원, 양극수, 김동원 명무를 은사로 동래양반춤, 동래할미춤, 동래학춤을 시작하였고, 전통무용을 전공했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동래야류 전수조교이고 동래학춤 이수자이다. <편집자주>

 

  어머니의 헛젯밥 나물은 어차피 가짜 제삿밥이기 때문에 흰색 도라지, 누런 고사리, 푸른 시금치 같은 삼색 나물에 뿌리와 줄기 잎을 따지는 유가의 법도를 구태여 따르지 않았다.

 

  효제충신 예의염치 다 가지고 있는 콩나물도 안 빠지고 들어가고, 미역, 톳, 무채, 박, 표고, 숙주 등의 나물도 제철에 따라 쓰였다. 그리고 간단하고 담백하게 소금과 조선간장, 참기름, 깨소금 정도로 맛을 살려냈다. 

 

  도라지는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재료였다. 도라지는 돌밭에서도 잘 자란다고 붙은 이름이다. 어머니는 이런 도라지, 고들빼기 같은 쓴 나물을 참 좋아하셨다. 사실 말이 나물이지 삼과 같이 몸에 좋은 약초였다.

 

  그래서 쓴맛을 없애기 위해 소금에 바락바락 치대서 한나절 정도 찬물에 담가 두었다가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내어 물기를 빼냈다.

 

  그리고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볶아서 참기름 한 방울에 통깨 약간 뿌려주면 아삭한 식감의 도라지나물이 완성되었다.

 

  요즘은 쉽사리 고사리를 구할 수 있지만, 어머니 시절에는 봄에 발품을 부지런히 팔아야 했다. 온 산에는 초봄 고사리를 뜯으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고, 고사리 꾼들을 피해 더 깊은 산속을 헤매야 채취를 할 수 있는 귀한 푸새였다.

 

  그렇게 채취해서 삶아서 말린 고사리는 다음 해 봄까지 중요한 제사나, 절세 음식이 되었다. 

 

  어머니는 봄에 직접 꺾어 말린 고사리를 물에 불려 삶아서, 또 물에 우려내었다. 푹 우려낸 고사리를 작은 솥에 넣고 간장과 참기름으로 볶아서 고사리가 물러지면, 통깨를 넣어 살짝 볶아 마무리했다.

 

“올라나 가니 올고사리   

내리 오느냐 늦고사리   

자작금 자작금 끊어다가   

꽃바구니도 담아놓고   

요왕님전에 문을 빌려   

조왕님 앞에 솥을 빌려   

사끈 각자 티어가지   

갖은 양념을 묻히가니   

열두 판에다 갈라다 놓고   

시금시금 시아바씨..”   

 

-경남 양산/ 나물 노래 중에서

 

 

  시금치는 대륙에서 전해진 참 친화력이 좋은 채소였다. 사시사철 잘 자라고, 특히 추운 겨울에도 약간의 햇볕만 받으면 푸르름을 잊지 않는 생명력이 지독한 놈이었다.

 

  특히 바닷바람을 머금어야 잘 자라기에, 내 고향 쪽 시금치는 단맛이 일품이었다. 거기다가 생채로 쌈을 먹어도 맛나고, 나물, 찌개, 잡채, 김밥 등 어디에도 잘 어울렸다.

 

  시금치는 물이 끓으면 소금을 조금 넣어주고, 그야말로 금방 살짝 데쳐내어 바로 찬물에 씻어 물을 푹 짜야 단맛을 살릴 수가 있었다. 거기에 조선간장과 참기름 통깨를 넣어 살살 달래듯이 주물러 주면 달달한 시금치나물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맨날 먹어도 안 질리는 콩나물, 겨울에 맛난 미역, 톳나물, 입맛 떨어지는 여름에는 단 배추 무침, 고구마 줄거리 무침, 가을에는 박나물, 버섯나물 등 제철에 나는 나물들이 헛젯밥 상에 올랐다.

 

  나물이 마무리되면 디포리, 황 멸치, 다시마, 무, 파로 우린 물에 두부와 홍합과 새우 개발을 넣은 맑은 조포 탕국을 끓여냈다.

 

  여기에 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정구지에 홍청 고추, 애호박을 썰어 넣고, 개발과 백합을 잔뜩 넣은 정구지 지짐을 서너 장을 얇게 부치고, 삐등하게 말려놓은 서대나 낭태 몇 마리를 아궁이 깻대 불에 은근하게 구우면 헛젯밥 준비가 끝났다.

 

  어머니는 큰 양푼에 온 가족이 먹을 하얀 쌀밥을 푸고. 각종 나물을 얹어 탕국 한 대접을 붓고, 조선간장을 서너 숟갈을 넣고 숟가락 두 개로 밥을 비볐다.

 

  우리는 양푼에 둘러앉아 부지런히 숟갈을 놀렸고, 손으로 통째로 뜯어먹는 지짐이와 하얀 서대살에,

제사가 아닌 날 가족과 둘러 먹는 헛젯밥이 산 사람의 보약이라는 비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인생에서 이승과 저승이 그리 멀지 않았다. 병풍 앞에서 내 손으로 나물에 탕국 얹어 비벼 먹으면 그곳이 이승이고, 병풍 뒤에서 자손들이 주는 대로 차려진 제삿밥을 먹으면 그곳이 저승이라는 것을 환갑 고개에 올라서야 알았다.

 

지방 사를 일은 아직 먼데

제삿밥이 먹고싶다

제삿밥 중에도

마늘, 고추, 파도 넣지 않은

탕국이 머고싶다

무와 두부

그리고 고기 몇 절음

청명 부근

구름 떠도는 하늘을 닮은

맑은 탕국이 먹고 시다

이런날이면

헛제삿밥을 차린 마음이 짚인다

난데없는 입맛의

출처가 혀끝에 닿는다

 

혼령 떠나고 난 뒤의

그 심심한 뒷말

 

-박현수 시/ 헛제삿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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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2/24 [15:48]  최종편집: ⓒ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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