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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상식콕
영화 기생충과 사회적 상상의 필요성
기사입력: 2020/04/03 [16:32]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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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민/이상민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UWNEWS

Q) 영화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무려 4관왕을 한, 우리나라 영화입니다. 어떤 수식어도 아깝지 않은 자랑스러운 작품입니다. 수상에 대한 성취와 더불어, 이 작품이 지닌 영화적 성취도 가히 놀라운데요. 

 

영화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와 함께 자본주의 사회를 섬뜩하게 그려냅니다. 빈자와 부자의 이야기,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그들이 섞이는 이야기, 그 와중에 알게 되는 또 다른 지하. 끊임없이 오르내리던 그 계단이 낯설지 않은 것은, 지금도 계단 앞에서 망설이는 우리의 현실이 투영되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여러분들은 어떤 점에 매료되셨나요. 

 

A)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논의는 이미 케케묵은 이야기입니다. 그에 대항한 공산주의 시스템이 한 시대를 풍미하고 획을 그었지만, 공산주의는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지요. 자본주의 그 자체는 절묘하게 포착했으나, 공산주의 혁명 이후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필자는 이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 가운데 하나가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기심의 현물화가 돈이며, 결국 돈의 역학관계로 움직이는 자본주의는, 인간과 사회의 니즈(needs)를 파고든 차악의 시스템일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자본주의 이상의 제도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부자인 사장의 집과 빈자인 기택의 집은 당연히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 차이는 수 십개의 계단으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과연 빈자들이 숨 쉬지 않고 계단을 오른다고한들 그들이 원하는 집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영화는 그 미지수를 그리고자 빈자와 부자의 교집합을 만들어 냅니다. 물론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빈자 밑에 또 다른 빈자가 있다는 것을. 이 지점에서 영화 기생충은 동 시기의 영화 조커와 묘하게 크로스오버됩니다.

 

시스템에 처절하게 무너진 가난한 자들의 폭발이 있습니다. 조커에서는 그 폭발이 폭동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진실인지 허상인지는 알 수 없고, 기생충에서는 그 폭발이 살인으로 나타나는데, 그 이후의 삶을 알 수 없습니다. 

 

기생충에서 인물들은 분명 많은 범죄를 저지릅니다. 대학 증명서를 위조하는 사문서위조 및 행사, 허위 경력 등으로 과외를 하고 돈을 받는 사기죄, 복숭아 가루로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상해죄, 범죄목적으로 부자의 집에 들어가는 주거침입죄, 절도죄, 결국에는 살인죄까지. 한 식구들이 행한 범죄들치고는 그 죄명들이 어마어마합니다. 

 

모든 행동과 그들의 인생에는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빈자들은 그 선을 넘기 위해 위와 같은 범죄에 이르렀습니다. 아, 물론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아인슈타인의 말이 떠오릅니다.

 

‘이 세상을 이해하지만,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사회적인 상상력은 우리를 현재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상의 제도들은  어느새 우리를 규정짓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징이 어느 순간 부조리해 졌다면, 우리는 다시금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부자건 빈자건 우리는 그 상징과 상상 속에 함께 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필자는 사람을 믿습니다. 정확하게는 사람의 인지가 낳은 상상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상상은 마침내 우리를 조금 더 높은 차원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점마저 믿습니다. 다시금 상상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분명 그런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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