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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한 정치인의 죽음에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기사입력: 2018/08/23 [17:10]   울산여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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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우 본지 논설위원     ©UWNEWS

한 명의 정치인이 죽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의 삶이 어떠했기에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목 놓아 울음을 터트리는 것일까? 좋은 정치를 추구한 정치인,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가난한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를 외쳤던 정치인. 고(故) 노회찬 의원을 통해 한국 정치의 현 주소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우아한 한글의 정확한 용어를 찾아 절묘하게 사용하면서, 촌철살인의 유머로 상황을 정리하는 정치인으로 평소의 노 의원을 기억한다. 지성적이고 유머 넘치는 그가 생명보다 명예를 택하며 죽음이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무슨 연유였을까? 그가 떠난 후에서야 대중들은 그가 추구한 정치적 가치와 신념의 크기를 절감한다. 하지만 슬픔을 터트리는 대중들은 그 죽음의 정치적 의미를 간파하고 있을까? 제2, 제3의 노회찬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보의 왜곡과 정치자금법의 모순을 알고 있을까? 만약 알고 있었다면, 고독 속에 있던 故노의원에게 위로의 말이나 따뜻한 눈길이라도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혹시 우리의 애도는 죽음 앞에 모든 것을 미화하려는 대중들의 기만은 아닐까? 

 

분향소를 찾는 정치인들의 가식을 박지원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이란 문제가 된 정치인을 공격해서 정치 생명을 끊어 버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랬다. 정의당은 정당 지지율 2위라는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진보는 보수보다 도덕적 우월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노회찬 의원 사건은 그 상승세와 도덕성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다.  때문에 동지들은 외면했고 탈당조차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결국 그는 스스로의 모욕과 죄책감을 짊어지고 세상의 굴레를 벗어버렸다.

 

큰 건물을 방문 하면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는 원하는 층으로 데려다 준다. 사람들은 엘리베이터가 제대로 만들어 졌는지, 바르게 관리되고 있는지 염두 하지 않는다.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이 정상적인 것을 증명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의심 없이 올라탄다. 이번 사건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사람이 곤란을 겪는 것은 그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알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다.  

 

故노회찬 의원 사건은 경제적 공진화모임(경공모) 김동원씨로 부터 강의료 이천만원을 받은 것에서 시작한다.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도 모 변호사로부터도 금전을 지원받은 것은 결정적 패착이었다. 도 모 변호사는 드루킹의 최 측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故노회찬 의원은 야인 신분이었다. 좋은 정치를 위한 순수한 후원금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고, 후원회를 통해서만 모금할 수 있는 현행 정치자금법은 정상적인 신고절차를 밟을 수 없도록 제약하고 있었다. 결국 좋은 정치를 하고 싶은 현실 정치인은 그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故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통해 불법적 정치자금을 양산하는 제도적 한계를 짚어내야 한다. 그가 남겨준 숙제를 풀어야 한다. 원 내외를 차별해서 정계진입 장벽을 높이고, 불법 편법적 기부가 판을 치는 정치자금법을 개선해야 한다. 

 

나아가, 드루킹 사건의 본질을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 매크로 프로그램 ‘킹크랩’을 통한 댓글조작에 분노할 수 있지만, 분노의 감정으로 인해 사건의 본질과 진실을 흐려서는 안 된다. 시시비비를 가리기도 전에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 상에서 진실과 뒤엉켜, 정직한 정보를 분별 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거짓 정보는 무차별적으로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강력하게 확산된다. 조작된 사실이, 진짜 사실처럼 유명해져 사람들은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며 세상을 해석한다. 사실 당사자가 사실을 확인할 시간도 주지 않고, 또한 확인할 새도 없이 왜곡된 정보와 소식이 뉴스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혼탁한 정보의 홍수 시대는 살고 있다. 

 

깨끗한 정치를 지향했던 좋은 정치인을 과도하게 매도했다. 확인도 되기 전에 뉴스에 의지해서 판단을 마쳤고 여론은 그를 확인 사살 했다. 누가 그런 뉴스와 여론을 생산했을까? 또 누가 그것을 소비하고 재생산 했을까? 불합리한 기득권의 음모를 뿌리 뽑아야 한다. 또한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대중적 판단력을 한 정치인의 죽음을 통해 이제는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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